Page 73 - 2021년 01월호 전시가이드
P. 73

다시보는 전시









































                                                                                      '여정' 부분도, 90×200cm, ⒸADAGP



            심을 갖고 모으고 있다. 작가의 작업실은 작은 자연사박물관, 해양생명연구소       시선을 생생하게 현장감 있는 시선으로 위치시키면서 화면에 몰입시킨다. 주
            를 조금은 연상시킨다. 작가는 그 외에 해안가에서 접할 수 있는 다양한 사물      어진 화면, 사물이 전시되어 있다는 느낌 보다는 그런 차이를 자아내는 문턱
            들, 오브제를 수집하고 이를 응용해서 작업을 한다. 일상의 사물들이 미술의       이 순간 사라져버리고 실제 따개비가 있는 바닷가의 어느 공간으로 우리 몸이
            영역으로 스스럼없이 밀려들어와 미술품과 사물의 구분을 지우면서 발견된          밀고 들어와서 보고 있다는 체험을 강렬히 안기는 편이다. 그러기위해서라도
            사물의 지닌 매혹적인 형태나 물성을 건져 올리는 전략이다. 그로인해 녹슨        따개비의 입체적인 연출과 표면과의 연결고리가 매끄럽게 연착륙되는 배려
            철판과 어업과 관련된 여러 도구들을 가능한 모아 그것과 따개비를 연결시키        가 필요해 보인다. 시간에 흐름과 경과의 흔적이 고스란히 스며든 실제 사물
            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바다는 특정한 풍경인 동시에 무수한 생명체를 거느리       을 적절하게 취해서 그 위에 보다 잘 가공된 따개비의 부착, 그리고 주변의 회
            고 있는 공간이다. 바다가 멈춰있는 해안가는 온갖 생명 있는 것들과 인간이       화적인 색채와 붓질의 효과 등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루며 밀려들어가는 감각
            부려놓은 인공의 사물들이 겸해 있어서 작가는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자기 작        말이다. 따개비란 소재의 재현이나 연출이 작업의 의미를 담보해주는 절대적
            업의 소재로, 주제로 삼아 힘껏 껴안고 있다.                       인 것은 아니고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체적인 조형의 높은 완성도일 것이다.
                                                            보다 자연스럽고 적절한 개입으로 어우러진 따개비 풍경!
            우선 사각형의 캔버스 표면을 바위나 철판, 혹은 바닥과도 같은 물성과 색채로
            연출되면 그 위에 따개비를 부착하고 다시 회화적 공정을 거쳐 마무리를 한다.      녹슨 철판이나 원형의 드럼통 뚜껑에 붙어나가거나 굵은 로프에 매달려 기생
            보는 이들은 조감의 시선으로 혹은 정면으로 일어서서 다가오는 따개비 더미        하는 따개비도 그렇고 사실적으로 묘사된 유물의 피부를 점유해나가는 따개
            를 바라본다. 그것은 실제와 허상 사이에서, 입체와 평면의 경계에서 흔들린       비 등은 결국 시간의 흐름과 함께 인공의 것들을 덮어나가고 지워나가는 자
            다. 회화와 조각, 오브제가 종합해서 환영을 극대화시킨 작업이자 해안가에서       연의 힘을 은유하는 듯도 하다. 그래서 무한한 자연의 시간 속에서 느끼는 유
            흔히 접하는 특정 장면을, 그 현장성을 생생한 환각으로 안겨주는 작업이기도       한한 인간의 공허한 시선과 비애의 감정 또한 이 작업에는 무겁게 눌려져있
            하다. 화면은 바위가 되거나 특정 사물의 피부가 되어 버렸다. 바탕 면을 망각     다. 한편 따개비로 대변되는 자연이 보여주는 생명력은 무서운 증식으로 세
            시키고 새로운 물질로, 상황으로 돌변하는 이 변신은 미술이 지닌 오랜 환영       상의 모든 것을 지우고 자기화하면서 맹렬히 살아나간다. 자연계의 모든 생
            술의 연장선에 걸쳐있다. 동시에 화면이 그대로 사물 자체로 육박하는 작업으       명체는 생명 유지와 번식이라는 절대 절명의 과제를 수행하는 지독하면서도
            로 평면성을 지우고 입체적인 화면으로의 적극적으로 변신을 도모하고 있다.        무척 처연한 장면을 보는 이에게 안긴다. 바닷가에서 오랜 시간 눈여겨 본 것
            표면에서 융기되어 펼쳐지는 입체의 세계는 보는 즐거움을 준다. 나아가 시        들, 생명체와 사물들과 자연의 이치에 대한, 나아가 인간 삶에 대한 모종의 깨
            각적 착시를 부단히 자극하면서 이미지와 실제의 경계에 구멍을 낸다. 더구나       달음이 작가 작업의 뼈대를 이루고 있는 것 같다. 해안가에서 접한 생명체와
            움푹 패인 구멍에 레진으로 연출한 물웅덩이의 효과와 그 안에 잠긴 작은 게       일련의 오브제들이 이룬 공존의 풍경에서 연유하는 여러 상념이 현재의 작업
            의 연출 등은 매우 실감나는 바위의 표면 장치에 해당한다. 자연스레 관자의       에 두루 탑재되고 있다.


                                                                                                       71
   68   69   70   71   72   73   74   75   76   77   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