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1 - 경기룩아트Vol.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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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_                                                                                                                                  www.klookart.org







                            이념의 강을 넘어선 팝아티스트






                                                                                                     판화가  심 수 진
          한
              반도 이북의 주민이 남한으로 이주를 하였을 경우 과거 냉전
         시기에는 귀순 용사라는 다소 사상적 의미의 표현을 쓰던 시기

         가 있었다. 1990년대 이후로는 탈북 했다고 해서 탈북자라는 표                                                                                            글. 김재덕 미술컬럼니스트
         현이 일반화되었다. 참여정부 시기에 들어서면서 새로운 터에 정
         착하였다는 의미의 ‘새터민’이라는 표현을 법제화했으나, 흔
         한 통용으로는 여전히 탈북자라는 표현이 보편적으로 사용되어

         쓰인다. 밝은 어감의 단어를 골랐다고 하지만 정작 북한이탈주민
         들 내에서는 ‘새터’라는 단어가 오히려 자신들의 정체성을 부
         인하며 차별적인 표현으로 비춰진다는 이유로 반발이 심했다. 많
         은 탈북자들이 새터민이라는 단어에 혼란과 거부감을 느낀다고

         해서 현재는 정부 차원에서도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용어의 사용
         을 권장하고 있다. 이는 1997년 제정된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다. 해당 법에서는 북한이탈주민
         에 대해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에 주소, 직계가족, 배우자, 직장

         등을 두고 있는 사람으로서 북한 지역을 벗어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아니한 사람”으로 정의하고 있다. 결국 2008년부터
         는 법률 용어인 ‘북한이탈주민’을 전면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다만 ‘북한이탈주민’이 길다보니 줄여서 탈북민이라는 단어

         로 일반화 하여 쓰인다. ‘자’(者)라는 표현을 공식 명칭에 들
         어있는 ‘민’(民)으로 대체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2022년도
         6월 기준 탈북민은 3만3천여명으로 집계되고 있다.(통일부 북
         한이탈주민 통계. 2022).



            심수진 작가는 1997년 고난의 행군시기 중앙속도전 돌격대
         생활을 하다가 청진에 사는 외삼촌댁에서 표창휴가를 보낸 후
         혜산 5도구(중국)를 걸쳐 장춘에서 5년 여 기간 생활을 하였으

         나 공안(중국경찰)에 잡혀 북송 되어 가던 중 연길에서 달리는
         급행열차에서 탈출하였다. 열차에서 탈출하는 과정에서 머리등
         심한 타박상을 얻게 되고 길림성 돈화시(연변조선족 자치주)라
         는 지방에서 치료를 받게 된다. 그 후 산동성의 북경쪽 지방으로

         나와 한국으로 가는 비용을 마련 하고자 가정집에서 음식 만드
         는 일들을 하면서 한국으로 가는 꿈을 현실화하기 시작 하였다.
         이후 작가는 라오스-베트남-태국을 통하는 긴 여정을 통해 한
         국으로 오게 되었다.

           심수진작가는 재료들을 다양하게 접하게 되는 경험을 통해 작                                                                                    리치 130.3x89.4 아크릴 2021
         가가 걸어온 기다림과 그리움에 지치고 외로운 자신의 삶의 고



                                                       난한 여정을 달래려고 하였다. 투병 중 낙담했던 잡생각을 지                        심수진 작가와의 인터뷰 중 들려오는 이북사투리에서
                                                       으려고 병상에서도 짬나는 대로 그림 그리는 시간을 친구삼                        단신 월남하여 이북 고향땅을 다시 밟지 못하고 생을 다
                                                       아 몰두하며 자신의 작업과정에 많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초                      하신 아버지의 이북 사투리가 정겹게 다가왔다. 대학 1

                                                       기 도자기 작품을 통하여 창작의 출발을 하였으며 나뭇잎을                        학년 시절 텔레비전에서 특집 방송된 이산가족 찾기 생
                                                       모티브로 한 작품과정에서는 재료의 한계점을 뛰어 넘어서                         방송을 밤새 시청하고 계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오른
                                                       보고자 하였다. 칼로 파왔던 80여점의 판화작품 과정에서는                       다. 또 매년 추석이면 임시 차려진 임진각의 망배단에
                                                       인내의 깊이를 경험했다. 재료의 부담으로 모래를 연구하여                        고개를 떨군채 눈물을 훔치셨던 아버지의 모습이 머릿

                                                       나만의 작품을 해보고자 섬세함이 요구됐던 보석화 작품은                         속 영상으로 떠오른다. 하늘나라 높은 곳에서 그렇게 그
                                                       남,북의 미술표현의 다양한 오브제를 하나의 캔바스에 융합                        리워했던 평양땅을 원 없이 내려다보며 미소 지으실 아
                                                       하여 녹여내 보고자 하였다. 근작의 아크릴 표현은 작가가 병                      버지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가장 가깝지만 멀고먼 고
                                                       와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이겨낸 새 삶을 통한 밝은 세상을 바                      향땅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밝은 마음과 건강한 모습으

                                                       라보는 시각적 미학의 발로이다.                                      로 창작의 열을 다하는 작가 심수진의 미래를 상상하며
                                                                                                              응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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