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86 - 샘가 2023. 7-8월
P. 186
샘가 5분 QT
QT는 생명이다
송현자 권사(높은뜻정의교회)
남편은 복음성가를 틀고 나는 거실 블라인드를 올립니다. 편안한 성가가 흐르는 주방
에서 남편은 고구마를 찌고 난 신선한 야채와 과일을 준비합니다. 딸이 선물한 클래식
한 찻잔에 아주 연한 커피를 따르고 준비한 아침식탁에 마주 앉아 기도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존재했던 남편과 나의 아침 모습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하게 당당하
게 여겼던 일상이었습니다. 성품 좋으신 시부모님과 든든했던 친정 부모님, 아빠, 엄마
를 존경할 줄 아는 아이들 덕분에 행복한 날이 참 많았습니다.
열심히 살아온 나 자신으로 인해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 것 같은 착각에 뿌듯한 시간도
많았습니다. 결혼하면서 시부모님의 권유로 신앙생활을 시작했지만 가슴이 아닌 머리
로만 시간을 채워갔습니다. 대형교회 성도라는 자부심이 제 신앙의 전부였습니다. 남
편이 아프기 전까지는 세상은 이렇게 평탄한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대장암 4기입니다.
복막파종입니다. 복막이 터져 암세포 알갱이가 복막 안에 뿌려진 상태입니다. 하나님
은 보이지 않았고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다급하게 수술이 진행되었고 수술이 끝난
후 남편이 허공에 대고 중얼거립니다.
어쩌나! 아들, 딸 결혼도 못시켰는데...
남편을 향해 달려오는 시간이 두려웠습니다. 뭐든 해야 했습니다. 아들 결혼을 효도라
는 말도 안되는 탈을 씌워 무조건 밀어 붙였습니다. 허둥대며 헐값에 아파트를 팔고 사
무실을 팔고 공기 좋다는 도봉산 자락 무수골로 이사를 했습니다. 그렇게 이사도 아들
결혼도 주님과 단 한번의 의논도 없이 오직 저의 다급함으로 마무리 했습니다.
24시간 남편과 동행하면서 암과의 사투가 시작되었고 신앙생활도 열심을 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나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내가 하고 싶은 신앙생활이 시작되었습니
다. 예배에 잘 참석하면, 봉사 활동을 잘하면, 헌금을 많이 하면, 성가대원을 잘 돌보면
등등
내 욕망의 기초가 된 신앙이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렇게 기적 같은 3년이 지나고 5년을 넘어 10년이 되었습니다.
가끔씩 육체적 임계점에 다다를 때도 있었고, 불안함과 억울함에 흔들릴 때도 있었지
만 감사한 나날이었습니다.
서울대 병원 암병동 곁길에 철없고 속없는 개나리꽃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던 2022년
3월 25일 10년을 담당했던 종양내과 교수가 눈길을 피하여 읊조리듯 말합니다. 5cm
크기의 암덩어리가 소장을 막고 있어 이 시간 이후로는 물도 드시면 안됩니다.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