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샘가 2024년 5-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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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성전 재건의 적법성을 당시 총독 닷드내와 동관 스달보스내 등 아바삭 사
            람들이 다리오 왕에게 물은 내용입니다. 이들은 성전이 재건되는 것을 막으려 합니다.


              다리오 왕에게 올린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라(6-10, 17) 성전 재건을 막으려는 자와 성
            전을 재건하려고 하는 두 부류의 상반된 주장이 충돌합니다. 이에 유대 백성의 주장
            대로 바벨론 왕 고레스가 성전을 재건토록 조서를 내린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려 합
            니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라면 바벨론의 문서 보관 창고에서 확인하여 달라고 요
            청합니다. 그리고 성전 재건에 관한 다리오 왕의 뜻이 무엇인지 함께 묻습니다. 언
            뜻 보면 이 관원들의 행동이 성전 재건을 막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는 성전 재건을 막아 갈등을 빚고 있는 사마리아 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확인시켜서 갈등을 종식시키는 하나님의 성과입니다. 결과적으로 성전 재건의 적
            법성이 드러나고 막힘없이 성전 재건에 힘쓸 수 있도록 한 사건이 될 것입니다. 하
            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예언의 성취를 위하여 여러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결코 멈추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천지의 하나님의 종이라(11) 포로기 이후 하나님은 이스라엘 회복의 시작을
            성전 재건으로 삼으셨습니다. 회복은 자신들이 누구인지 아는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에서 부터입니다. 고난의 여정 이후 이들은 다시금 자신들이 천지를 지으신 하나
            님의 종이라는 정체성을 확인합니다. 하나님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고
            백을 합니다. 이 고백에서부터 하나님의 회복은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으므로(12-16) 유다 백성들은 먼저 저어졌던 성전
            이 무너지고 자신들의 성전을 다시 짓게 된 이유를 고백합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로 이스라엘은 주어진 나라를 잃고 성전이
            파괴된 쓰라린 과거가 있습니다. 이는 고난을 위한 고난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
            로 회복시켜서 다시 살리려는 목적의 고난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고백한 것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때가 곧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이고, 하나
            님의 회복의 때입니다. 성전 재건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회복의 약속을 이루시는
            증표입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멈추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
            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명을 이어 나아가야 합니다.


              적용: 지금 고난의 과정 속에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원하시는 것은 그 고난 속에서
            하나님과의 회복을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당신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라는 메시지
            는 아닐까요?

             젊은 여자가 책 한 권 들고 읽으려 했으나 너무 재미없고 딱딱해 곧 포기해 버렸습니다. 얼마 후 그녀는 한
             청년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바로 전에 읽으려던 책의 저자였습니
             다. 그때서야 그녀는 그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여 드디어 독파하게 되었습니다. 그녀가 그 책을 그토록 흥
             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건 무엇 때문일까요? 그것은 그 작가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그리
             스도를 알고 사랑하면 성경도 우리에게 살아 있는 책이 됩니다. 성경말씀에 대한 관심이 어쩌면 우리의 주
             님에 대한 관심의 척도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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