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32 - 김길환 카메라둘러메고 떠나다 3권 촬영노트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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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태백산
백설이 내린 후 아무도 밟지 않은 태고의 땅 설원을 오직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무릎까지 빠져 가면서 걷는데, 바람결에 날린 눈이 길
을 덮쳐 길이 보이지 않는다. 오직 등산로에 쳐놓은 밧줄만을 부여잡고 걷고 또 걷는다. 눈빛도 아니고 달빛도 아니다. 새벽 산야에 떠
오르는 여명의 빛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의 빛일 것이다.
너무 일찍 올라온 탓에 동이 트려면 두 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매서운 바람이 낮이 설다. 타관인 사람에게 홀대해서 부는 모양
인가. 살을 에는 추위를 피하려고 천제단 안으로 들어서니 구국의 안녕과 평화를 위함인가, 자식의 출세나 직장을 잡기 위함인가, 천
제단에 정화수 떠 놓고 촛불 밝히며 치성을 드리는 모녀의 간절함이 추위를 녹이는구나.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 했던가. 그 무슨 간절한 기도가 있어서 이 모진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눈 속을 헤치고 천제단까지
와서 기도를 드리는가.
날이 밝을 시간이 넘었건만 어둠의 궁창은 열리지 않고 애타는 진사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뿌연 안개만이 뒤덮여 있다. 하늘
이 열리기를 소원하는 간절한 마음들이 통했는지,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 하늘과 눈부신 태양이 설원의 태백을 선보인다.
아~아~ 천년을 살아온 주목의 자태가 고귀함을 넘어 도도하다. 오늘도 최상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한 순간들을 감사하면서 함께한
동료들과 따뜻한 커피 한잔 하면서 하산 준비를 해본다.
2010년 2월 20일
태백산에서 잠시 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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