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 - 김길환 카메라둘러메고 떠나다 3권 촬영노트 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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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다시 태어나기 위해 나는 죽는다.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살아있는 생명이 죽기보다 어려운 일은 세상에서는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오늘 죽기로 결
심을 했다.
나에게는 늘 같이 붙어 다니며 호흡하고 생각하고 떨어져야 떨어질 수 없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 있었다. 사람마다 개성과 취미가 다
르고 생각하는 마음이 다르지만 나는 카메라 렌즈를 통하여 사진과 함께 한 40여 년간의 삶이 기쁨이고 보람이었다.
사진과 함께하는 시간과 촬영을 가기 위한 준비, 촬영하는 순간순간 들, 필름을 현상하여 라이트박스에 필름을 올려놓고 루페 렌즈
를 보면서 느끼는 희열과, 비닐 파일에 필름을 정리하고 스캔하여 컴퓨터 작업하는 모든 일들, 사진 인들과 대화하며 공유하고 소통하
는 시간들이 기쁨이었고 삶의 활력소였다.
취미로 시작한 것이 한 해 두 해 시간이 지나고 기술과 지식이 쌓이고 연륜이 더해지니, 사진에 대한 집착과 애착에 몰입하는 시간
들로 빠져들게 되었다. 물론 경영하고 있는 사업에 큰 지장을 주지 않고 가정과 다른 것에 피해를 주지 않는 범위에서 시간을 활용했
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그것에 종속되어 끌려가며 절제하지 못하고 더 깊이 빠져드는 내가 밉기도 하고, 야속하고 공허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것과 단절할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없다. 굳이 딱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죽는 것
이다.
나는 왜 사진을 멈출 수밖에 없는가? 순수한 마음으로 사진을 시작하게 된 것이 사진에 대한 지식이 쌓이고 촬영 기술이 늘고 시간
이 지날수록 어느새 욕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좋고 비싼 카메라와 렌즈, 대형 카메라들과 장비를 구입하여 촬영하고 다른 사람들과 경쟁적으로 비교하며 남들에게 잘 보이고 자랑
하기 위하여 사진을 하게 되고, 사진 본질을 망각하고 사진을 촬영해 온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물론 비싸고 성능이 좋은 카메라와
렌즈 그리고 대형 카메라를 사용한다고 해서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찍기 위한 프로 정신으로 사진에 몰두
하는 것이 안 좋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람마다 자기가 추구하는 시각에 따라 환경과 능력에 맞게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나는 어느 날부터 진정한 사진에 대한 본질을 보지 못하고 남의 칭찬과 격려에 눈이 멀고 내 욕심과 정욕과 에고로 사진을 하고 있다
는 생각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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