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전시가이드 2023년 08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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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쉼터
벼랑의 터전
글 : 장소영 (수필가)
힘을 준다. 후두둑 팽팽한 기운과 함께 당겨져야 했다. 그런데 깃털처럼 살짝~ 몇 개월에 걸쳐 가뭄이 극심해 제한급수 얘기가 나올 지경이었는데 어떻게
쿵 들어 올려져 괜한 헛힘에 손이 민망한 듯 허공에서 딴청을 부린다. 누렇게 생명을 유지하고 꽃을 피운 것일까. 봄이 왔다지만 한동안 기온도 오락가락
말라버린 별꽃을 들어 밑둥을 올려다보니 0.5미리도 안 되는 뿌리가 꼬불꼬 겨울의 끝자락과 초여름의 날씨로 변덕을 부려 사람도 힘든 시기다. 물 한 모
불 달라붙어 있다.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금 얻을 곳 없고 의지할 벗도 없어 고단한 생을 이어나가는 무명의 잡초였다.
어떻게 10층 난간 외벽까지 왔을까? 지상의 비옥하고 넓은 터전을 두고 하필 그런데 아직 차가운 기운도 가시지 않은 3월 말 아침, 몇 송이의 꽃망울이 밤
이면 아찔하고 어지러운 높이의 외진 곳에 뿌리를 내렸을까? 민들레 홀씨도 새 벙글어 꽃을 피워냈다. 그 모습은 마치 앙증맞은 아기별을 보는 듯 했다. 잔
못할 일을 해내다니 경이로운 일이다. 털이 송송한 흑자색 줄기가 쭉 뻗어 나와 별을 닮은 하얀 다섯 개의 꽃잎은 끝
이 살짝 갈라진 모양새였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꽃술 끝은 살짝 노란빛을 띄
2월 어느 날 베란다 창틀 청소를 하는데 바깥에 아주 조그만 초록 새싹이 힐끔 어 청초했다. 아기의 순진무구한 눈빛에 담긴 별마냥 들여다볼수록 귀엽고 사
보였다. 저기에 무슨 틈새가 있기에 풀이 났을까. 고작 떡잎밖에 없는 연약한 랑스러운 꽃이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나풀대는 것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생명인지라 뽑는 것이 미안해 그냥 두었고, 곧 사라지겠거니 했다. 일부러 내 이 잡초를 별꽃이라 부르기로 하였다.
다보지 않으면 보이지도 않는 위치라 금세 잊어버렸다.
봄에 걸맞지 않는 폭우와 강풍이 휩쓸어 지역마다 크고 작은 피해를 입었던 4
어느새 3월이 되어 유리창을 닦는데 유리창 맨 왼쪽으로 푸른 잎이 바람에 살 월의 끝자락. 화사한 봄꽃들과 더불어 만개했던 나의 별꽃에게도 혹독한 시련
랑대며 알아달라는 듯 손짓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깜짝 놀라 문을 열고 내 이었던 것일까. 잠시 집을 떠나 있다 돌아오니 푸르던 잎새도 앙증맞은 꽃도
다보니 온몸에 보송보송 솜털이 돋아난 채 옆으로, 위로, 무성하고 싱싱한 자 빛을 잃어 누렇게 바래있었다.
태로 성장해 나를 맞이했다. 질긴 생명력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집에 들르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듯 이 광경을 보여주면 모두들 신기하다는 감탄과 좋은 일 안타까운 마음으로 죽음을 걷어내고 삶의 터전을 들여다보니 ‘아니, 이럴 수
이 생기려나 보다는 덕담을 건네 왔다. 가!’ 상상해온 굳건한 터가 아니었다. 시멘트와 도색 페인트 사이에 살짝 들뜬
페인트 실금, 그 위 한 부스러기 먼지에 뿌리를 내렸나 보다. 별꽃은 가고 없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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