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24 - 문득(聞得)_마음을 그릴 때 꼭 들어야 할 작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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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혜 선
Split 행성에서 온 그대
디지털 드로잉으로 표현한 다큰 왕자와 로제. 그들은 서로 다른 행성에 살고 있다. 안정과 평화를 나타내
는 푸른색과 초록색으로 차분하게 채색된 다큰 왕자의 행성과 불안정한 애착을 상징하는 열정적인 붉은
색과 보라색으로 물든 로제의 행성. 이 두 행성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우주 속에서 공존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인내’, ‘수용’, ‘경계’와 같은 단어들이 별자리처럼 떠 있다.
특히 ‘경계’라는 단어는 로제의 행성을 방문할 때 중요한 단어이다. 로제처럼 경계선 성격 장애를 가진 사
람을 만날 때는 유연하면서도, 견고한 경계가 필요하다. 다큰 왕자의 눈에만 보이는 모모는 둘 사이에 튼
튼한 방패를 세워준다. 이것은 다큰 왕자를 지켜주기도 하지만, 로제에게도 필요하다. 이 두 행성 사이에
놓인 다리는 수용과 소통의 의지를 나타낸다. 이 다리는 로제의 행성에 연결되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한
다. 다큰 왕자는 이제 다리를 연결하는 방법과 끊어내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나는 경계선 성격장애 내담자를 만날 때 필요한 holding, containing의 개념을 시각적으
로 표현하고자 했다. 또한 다른 두 행성의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며, 결국에는 함께 아
름다운 은하를 만들어 갈 수 있는지에 대한 희망을 담고자 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의 행성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빛나면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비추는 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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