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4 - 문득(聞得)_마음을 그릴 때 꼭 들어야 할 작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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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화 선





           2012년 7월 아버지의 작고가 있던 해, 가을. 운명처럼 그림을 시작했다.
           장례기간 나비가 내 몸에 한참 머물렀던 때의 기억이 백지를 마주하니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 이후로 삶에서 만나는 새도 곤충도 벌레 등등 모든 자연과 대화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리고 5년 후 2017년 내 영혼의 단짝인 여동생이 췌장암선고를 받고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
           또 한 번 내 삶이 완전 바뀌었다.
           급작스러운 아버지의 부재와 2년 조금 넘는 투병생활을 했던 동생의 부재.
           말로도 글로도 설명하기 힘든 감정을 표현하기에 가장 마땅한 것이 그림이었다.


           사실 어릴 적 화가가 되고 싶었던 꿈이 있었다. 부모님의 반대로 이루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을 서예동아리활동으로 채웠었다. 마음이 편안
           해지는 은은한 묵향이 좋았고, 붓을 잡는 게 좋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죽림 정웅표선생님께 체본을 받으러 다
           니며 10년간 안진경체인 해서부터 행서, 초서를 썼다. 한자공부 없이 서체체본을 받아 쓰는 것에 무의미함을 느껴 붓을 놓은 지 수년차 되
           었을 때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나는 매우 방황하고 있었다. 우연히 그 해 가을 동양화를 하시는 랑원 이의재선생님과의 인연
           이 닿았다.
           랑원선생님의 한마디가 가슴에 새겨졌다.
           “그림 그리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어. 그래서 행복하단다. 집을 갖고 싶으면 집을 그리면 되고, 산을 갖고싶으면 산을 그리면
           되지.”
           농담처럼 하신 그 말씀에 모든 것을 내려놓았던 나에게 그림 속에서 다시 가지고 싶은 것들을 떠올려가며 펼쳐갔다.

           올해로 어느덧 그림을 시작한 지 11년차.
           10년간 마음이 힘들 때, 혼자 있는 시간이 무료할 때 간간히 그렸던 그림들을 한꺼번에 되돌아보니 내가 그리고 있던 그림들 속에 공통점
           을 찾아냈다.
           자유, 도약, 희망, 에너지... 한마디로 꿈꾸고 있었다.
           아... 잃어버렸다고 생각했고 내려놓았다고 생각했던 꿈들을 그림에 담고 있었구나.
           뭘 원하는지 알게 되니 그것들을 공유하고 싶어졌다.

           2024년은 나에게 ‘그림’에 대해 진심과 간절함을 일깨우게 된 해이다.
           나의 다시 붙은 마음의 불씨를 그림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에도 불씨를 전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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