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 - 이진자 초대전 2022. 9. 28 – 10. 3 갤러리라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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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가
는다. 브론즈의 차가운 금속성에 가한 우레탄 컬러링은 중저 법을 시도하고, 입체파 화가들처럼 동작 하나하나를 면으로
음의 수자폰 소리처럼 묵직한 여운을 만든다. 흡사 풍진세상 재해석하며 비즈를 붙여나갔다.
을 겪고 난 후 지그시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와 도량이 생기듯,
이전 작품에 비해 한층 부드럽고 온화해진 모습이다. 전통미술 범주에서 보면 비즈 작업은 공예에 속한다. 그러나
작가는 조각에 기반을 두고, 한 땀 한 땀 수를 놓듯 비즈로 완
조각은 모든 대상을 정지된 상태로 보여준다. 따라서 조각가 성했다. 그 결과 <무희> 연작은 회화와 조각, 공예와 조각의
는 한순간, 하나의 동작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1990년대 이 경계를 넘나든다. 이렇게 전통적인 미술장르의 구분을 타파하
후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비디오와 같은 새로운 영상매체와 면서도 “조각 예술의 매력은 실상 노작의 소산이란 데에 있다”
설치, 미디어 작품들이 유행하면서 조각을 정지된 형상으로 는 조각가 김종영(金鍾瑛, 1915~1982)의 말처럼 비즈를 붙이
바라보는 통념은 사라졌다. 그러나 형체가 없는, 지극히 추상 는 일은 지문이 사라질 정도로 노동과 시간, 높은 집중력이 요
적인 ‘소리’를 형상으로 표현하듯이, 이진자는 멈춤을 전제로 구되는 수작업이었다. 그야말로 ‘노작의 소산’이다. 나이가 들
한 전통적인 개념의 조각에 움직임을 부여하고자 여러 가지 면서 작가는 정으로 돌을 쪼아가며 형태를 완성하는 석조각
시도를 하고 있다. <한국의 무희>는 여인의 인체는 정지한 상 이 힘에 부쳤다고 고백한다. 대신 석고로 형체를 만들고 그 위
태이지만 치마 끝 주름과 받침 부분의 패턴을 통해 동세를 표 에 비즈를 붙이는 작업으로 선회했지만, 끝까지 자신의 손으
현했다. 단순하면서도 괴량감 있는 형태와 과장된 곡면을 따 로 완성했다.
라 장식을 더해 순수 조형미를 전달하고자 했다. 이진자의 작품에는 남성 작가 못지않은 힘이 느껴진다. 그것
은 바로 무희의 동작에 비롯된다. 양팔을 위로 높이 올린 수직
이진자가 이번에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은 <무희(L'Almée)> 적인 동작이 에너지를 발산한다. 작가는 역동적인 무용수들의
시리즈다. 올 봄 선보인 〈빛의 외침〉에서 작가는 태양의 신 ‘아 춤사위를 움직이는 모습으로 재현하고자 5명의 무희가 360
폴로’를 180㎝에 이르는 건장한 남성상으로 재현한 바 있다. 도로 회전하도록 설계했다. 이로 인해 전시장에는 조명을 받
“아폴로 신이 인간에게 준 빛을 보는 매개체가 소리이며, 그것 으며 다채로운 빛을 발산하는 무희가 쉼 없이 움직인다. 다만
이 바로 빛의 외침”이라는 작가의 설명처럼, <빛의 외침>은 비즈의 화려함이 자칫 장식적으로 보일 수 있어 우려스러운
근육의 흐름에 따라 면을 분할하고, 그 위에 비즈를 붙여 빛의 점도 없지 않다.
변화에 따라 반짝이는 효과를 연출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에서도 무희의 동작 속 근육의 미세한 움직임을 다 조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빛과 소리를 형상으로 구현하기 위
양한 색의 비즈로 표현했다.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서양 근대 해 이진자는 이번 전시에 여러 가지 시도를 했다. 이번 《빛과
회화사의 대표적인 미술사조인 인상파 화가들이 태양광 아래 소리의 찬가》에 관객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에서 눈에 보이는 대로 그렸듯이, 무용수가 소리에 따라 움직 이번 전시가 2세대 여류작가로 여전히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
이는 모습을 작가가 느낀 대로 표현했다. 빛을 과학적으로 해 는 이진자 작품세계의 스펙트럼을 넓히며, 새로운 도약의 계
석한 해석해 대상을 점으로 표현한 신인상파 화가들처럼 점묘 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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