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1 - 전시가이드 2021년 07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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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AGP 용날다 30×30 드로잉, 삼베, 염색 ⒸADAGP 옛이야기-꿈 70×70 드로잉, 꼴리쥬, 염색, 광목, 무명
라의 보물로 정해지기도 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개념으로 그리는 그림까지도 내고 있다. 이는 ‘자신은 조선여인의 그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고 싶다는’ 고백
인위적 표현인 ‘그린다’보다는 자연원리(우주적 섭리)의 기운을 받아들인다는 일 것이다. 필자가 십여 년 전부터 유심히 고금화 작가의 작품 활동을 추적하
뜻으로 ‘친다’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사군자 특히 난(蘭)이나 산수화 등은 그리 는 즐거움 속에 얻어낸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는 조선인의 대표생활덕목
는 게 아니라 치는 것이다. 참고로 양 무리를 기르는 것 역시 자연(우주)의 기 이자 삶의 일상적 철학이었을 무위정신(無爲精抻)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
운을 대거 활용한다는 이유에서 ‘친다’고 했고, 상대적으로 돼지처럼 인위적으 해 고려한 방법을 이용하는 모습이다. 그것은 조각보 바느질을 이름 없는 할
로 제한하여 키우는 것은 치는 것이 아니고 ‘먹인다’라고 했다. 이 부분을 이렇 머니들이 그들의 솜씨로 바느질하게 하고, 그 위에다가 작가 본인이 보충 바
게 지루하게 설명하는 것은 오늘의 작가 고금화가 다름 아닌, 위에 설명한 조 느질 및 전체 면의 적당한 여백에 민화 이미지를 그려 넣어 작품을 완성하기
선의 대표적 예혼(藝魂)인 ‘치는’ 방식의 작업으로 우리에게 예술적 쾌감을 불 도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화가 자신이 천 조각 이어붙이기 바느
어 넣어주는 예술가라는 걸 설명하기 위해서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질을 했을 때보다 작위적(作爲的)인 부분이 훨씬 줄어들도록 하기 위함인데,
고금화는 우리나라의 큰 자랑거리인 민화를 조선의 무위적 예혼(藝魂)을 활용 작가노트에서도 언급했듯이 이는 조서여인들의 전통이었던 ‘무작위의 미’를
하여 현대화시키는 작가인 것이다. 존중하기 위함이다. 고금화는 전통의 맥을 보전(保全) 또는 고수하기 위해 이
렇게 오브제(Objet) 미술형식이 되더라도 자신이 평소에 품었던 민족적 민화
잠깐 그녀의 작업 노트들 중의 두어 곳을 들여다보자. 정신의 맥락 드러내기를 먼저 챙기고 있다. 이러한 양식의 민화작품은 그 발상
부터가 특이하고 새롭다. 보통의 민화 제작의 형태를 살펴보면 감상용 회화 작
‘어느 날 무심코 천년의 색으로 물들인 전통침선의 옛 향기에 마득하여 수집 품과 생활소품과 협업제조(Collaboration)하는 실용구(實用具)의 민화가 있
한 그 세월이 이젠 일상이 되었다. 서양의 퀼트나 십자수에 밀려 잊혀져가고 다. 이 중 첫 번째인 감상용 회화 작품의 민화는 전체 화면(全面)에 그림을 그
있는 전통규방공예 조각보에 남다를 애착을 갖게 된 것은 한 땀 한 땀 조각에 리고, 두 번째로는 베갯머리나 한복소매 또는 집안 장식품의 부분에서 주로 보
서 보이는 작위적이지 않은 무심한 손의 움직임으로 빚어내는 추상성에 매료 이듯이 민화를 용구의 부분에만 자수나 핸드페인팅 등으로 도안 삼아 그려 넣
되었기 때문이다.’, ‘모시, 삼베, 광목 등의 보푸라기를 모아 마름질한 시접 사 는 공예 방식이 있다. 후자의 경우에서 민화는 공예를 돕는 역할만을 한다. 그
이로 바늘을 넣어 손끝에서 한 땀 한 땀 담아온 침선은 모자람도 더함도 한 러나 고금화의 작품 양상은 후자의 경우, 즉 생활용(生活用) 공예의(공예품의)
결같은 마음에 실어 그윽한 여운으로 이어진다. 조각조각에서 배어나는 갖 특성을 변용하여 감상용 회화 작품으로 완성시킨다는 점에서 독보적이다. 당
은 색의 짙고 흐림에 따른 쥐대기로 바람(Gradation) 효과를 살리기도 하고, 연히 고금화처럼 민족의 전통적 자부심을 본격적인 미술언어로 만들어 세상
그 사이를 홈질로 드러내 모양을 내고 마감도 한다. 자유의지로 마음을 편안 으로부터의 공감을 얻는 발상의 작업 방향은 현 사회의 문화적 추세나 상황으
히 하고, 머릿속에 저절로 떠오르는 이미지를 여울에 가린 의미의 세계를 열 로 보아 꼭 필요한 부문이다. 그녀는 이 시대 상황이나 여건 중에 미술이 안고
어젖히는 느낌으로, 갖은 오브제로 든 속살을 충실하게 채워 마음의 깜냥으 가야 할 분명한 과제의 길을 본인 작업의 시리즈로 확보해낸 게 틀림없다. 아
로 헤아려 본다.’ 마도 이러한 면은 작가가 오래전부터 그림뿐만이 아니라 전통규방공예와 조
각보에도 조예를 다져온 터였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작가노트에서 엿보이듯이 고금화 작가는 마음속에 예의 조선 여인들이 품었
던 제작의지 그대로를 끌어안고서 저들과 동일한 마음앓이를 즐기며(?) 창작 이 시대는 실용주의적인 문화가 심할 정도로 생활 속에는 물론, 예술 속까지
에 임함을 알 수 있다. 또 한 편으로는 자신의 선배인 조선 여인들의 정신이 서 깊이 자리를 잡으려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민족주의적 전통에는
양의 유사한 문화 때문에 그 인기가 뒤질세라 걱정하기도 한다. ‘작위적이지 별 관심 없는 채 편의주의 일편도의 사회가 되어져감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현
않은 무심한 손의 움직임으로 빚어내는’이라는 대목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그 대의 시중 갤러리들을 메우는 작품들을 보면 외래적 느낌의 작품들이 거의 대
녀는 분명히 조선의 ‘무위자연론(無爲自然論)’을 향한 지극한 동경심을 나타 부분이다. 그런 중에 민족 뿌리의식을 고스란히 지녔으면서도 현대미술로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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