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2 - 전시가이드 2021년 09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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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철 컬럼




































               영은 김혜영 가능성 평화03 (Possibility#Peace 03) 116.8x80.3cm, acrylic on canvas 2019



        미술문화(美術文化)의                                     대정부(對政府), 건의(建議)의 구채적(具體的)인 사항(事項)을 설정(設定)하고
                                                        지구력(持久力) 있게 노력(努力)해야 한다.
        단서(端緖)                                          위의 인사동 길에 ‘미술문화의 터’를 정립(正立)시키기 위해서는 문화부(文化

                                                        部) 등 해당부처(該當部處)의 관심(關心)과 다양한 지원, 인사동 갤러리스트
        박종철 (미술평론, 칼럼니스트, KCAA대표)                       들과 건물주(建物主)들의 미술문화의 진흥(振興)과 함양(涵養)에 대한 신념(
                                                        信念)이 뒤따라야 한다. 그리고 사단법인(社團法人) 한국미술협회(韓國美術
                                                        協會) 뿐만이 아닌 전국(全國)의 미술인(美術人)들과 화랑협회 등, 관련단체(
                                                        關聯團體)의 대동단결(大同團結)이 선행(先行)되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울, 미술문화(美術文化)의 상징(象徵)인 인사동(仁寺洞) 길에 크고 작은 갤     도 미술계(美術界)가 광역(廣域)의 미술범위(美術範圍)를 포용(包容)해야 한
        러리가 산재(散在)해 있다. 그러나 한국(韓國), 서울의 미술문화의 상징인 갤     다. 그래야만 정치권(政治權)도 미술문화의 다양성(多樣性)을 수용(受容)하게
        러리스트리트가 인사동 길이라고 말하기엔 뭔가 허탈(虛脫)한 느낌을 금(禁)       된다. 얼마 전 국회의사당(國會議事堂) 갤러리에서 국회의원(國會議員) P씨
        할 수 없다. 국적불명(國籍不明)의 도기(陶器)를 비롯한 각종(各種) 공예품(工    가 기획(企劃)한 전시회(展示會)의 작품 중(作品中), 전(前) 대통령(大統領) 박
        藝品)들, 골목을 점거(占據)하다시피 한 여러 유형(類型)의 음식점(飮食店)과     근혜씨를 테마로 한 작품 때문에 전국(全國)의 매스컴으로부터 전시기획자(
        주점(酒店)들, 기타(其他) 잡다(雜多)한 상점(商店)들을 접(接)할 때면 이곳이   展示企劃者), P씨는 뭇매를 맞았다. 전형적(典型的)인 ‘메카시즘’이다. 무엇보
        과연(果然), 한국을 대표(代表)하는 갤러리 가(街)인지... 되물어진다. 이웃 나  다도 슬픈(?) 것은 한국(韓國) 미술인들이 침묵(沈黙)이라는 미덕(美德?)을 발
        라, 일본(日本), 도쿄의 미술거리나 중국(中國), 베이징의 예술구(藝術區), 798  휘(發揮)했던 점이다. 그 작품은 정치(政治)를 풍자(諷刺)한 저널리즘을 테마
        처럼 뚜렷한 미술문화의 ‘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화랑 가(畵廊街)로      로 한 작품에 불과(不過)하다. 온갖 신문(新聞), TV 등 매스컴에서는 P씨의 도
        서의 격식(格式)은 갖추어야 한다. 우선(于先) 갤러리의 수(數)가 많아, 밀도(密  덕성(道德性), 정치적 수준(水準), 자질(資質), 심지어(甚至於)는 인간성(人間
        度)가 높아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화부(文化部) 등 관련부처(關聯部處)     性)까지를 매도(罵倒)하기도 했다. 위정자(爲政者)에 따라 어김없이 민중미술
        의 행정적(行政的), 재정적(財政的)인 지원(支援)이 뒤따라야 한다. 한국(韓國)   인(民衆美術人)들이 탄압(彈壓)을 받아왔다. 최근(最近)에는 종로(鐘路)의 한
        의 국제적(國際的)인 위상(位相)의 확립(確立)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필요(必      건물(建物)에 정치인가족(政治人家族)을 테마로 한 벽화(壁畵)가 화제(話題)
        要)한 조치(措置)이다. 임차화랑(賃借畵廊)이던, 자가 화랑(自家畵廊)이던 다     로 떠오른다. 민감(敏感)한 시기(時期)에 정치적인 의견(意見)을 표현(表現)할
        양(多樣)한 지원이 이뤄져야 하고, 대(大), 중(中), 소(小)의 기업별(企業別), 후  수 있는 ‘벽화의 장(場)’을 제공(提供)한 건물 주(建物主)의 열린 마음과 용단
        원(後援)도 이뤄져야 한다. 미국(美國)을 비롯한 유럽 각국(各國)의 소위 선진    (勇斷)에 존경(尊敬)을 표(表)한다.
        국(先進國)들을 보면 한결같이 미술문화의 발전(發展)이 눈길을 끈다. 또 인사
        동번영회(仁寺洞繁榮會)와 화랑협회(畵廊協會) 등 자치회(自治會)도 인사동        그 벽화내용과 상대적(相對的)인 의견을 가진 자들의 주장(主張)도 시각화(
        길이 명실공(名實共-)히 서울의 미술문화의 상징적(象徵的)인 거리가 되도록       視覺化)되어 오를 것이다. 민주주의(民主主義)는 이렇게 변증법적(辨證法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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