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전시가이드 2021년 09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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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덕 컬럼





































           복된가을벌판. 목판. 60x80cm








         삶을 짓는 행복의 벽(廦)                                 가로 인정받고 있다. 작가는 목판화를 통한 도시의 건축물과 자연에 스며들어
                                                        있는 들판의 이미지 등 다양한 삶의 주변 풍경을 일기를 쓰듯 각주제마다 연
        판화가  정 순 아                                      작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그녀는 특히 들판이라는 주제를 통해 자연의 변화
                                                        와 풍요 속 그 안에 내재된 세속의 현대인들의 삶에 의미를 되 새겨 보고자 한
                                                        다. 목판화는 한국인의 민족정서와 체질적으로 부합하는 면이 있어 작가들은
        김재덕 (갤러리한 관장, 칼럼니스트)                            시대상을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으로 목판화를 사용해 왔다. 또한 목판화
                                                        는 판화의 표현기법 중 가장 자연 친화적이다. 다른 판종은 화학적 반응을 기
                                                        반으로 하며 물리적 압력의 수단이 동원되기도 한다. 이에 비해 목판화는 나
        자연이 가져다주는 드넓은 들판은 계절의 흐름을 타고 제 각각의 풍광(風光)       무, 한지 등의 재료로 자연적인 표현의 방식이 그대로 전수, 활용 되고 있다.
        을 감상토록 해준다. 생명을 관찰 할 수 없을 것 같이 모든 것이 얼어붙은 것     이는 표현하고자 하는 자연의 들판과 도시의 풍경이라는 모티브에 터치와 질
        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삶이 존재하는 겨울과 새로운 활력을 가지며 온갖 생명       감이 원초적 감성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작가의 의도에 가장 유효한 표현
        이 만개하고 노래하는 봄, 초록의 녹음이 깊이 물들며 초원이 절정을 이루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여름, 그리고 또다시 찾아올 동토(凍土) 속에 살아남을 지혜로 겨울나기를 준
        비하고 철새들이 떠나는 가을. 많은 작가들은 이러한 들판의 사계절을 모티브       자연(nature)은 서구어로 본성이라는 의미도 있는 만큼 인간의 천부적 자연
        (motive) 삼아 사랑과 연민으로 채우고 안타까움과 한탄 섞인 아쉬움의 감정    권인 자유와 평등의 보장을 무엇보다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순
        으로 저마다의 방식으로 표현 한다. 그리고 작가는 창작이라는 사고 속에 그       아작가는 자연의 낭만성과 야성이 아니라 평화롭고 자유로운 평등한 사회의
        저 그 느낌을 담백하게 이야기 해주고자 작업실에서의 고난(苦難)한 작업과        원형을 복원 할 것과 함께 우리의 욕심으로 치유 받지 못하는 헛된 욕망에 자
        정을 이야기 해주고 있다. 계절의 흐름 속에 들판에서 일하고 지켜보는 것이       유(自由)로워야 함을 주창하고 있다. 윌리엄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
        어떠한 감성으로 공감 할 수 있는지를 탐닉한다.                      는 ‘자연이 주는 지식은 달콤하기에 우리의 지성이 간섭하여 사물의 아름다운
                                                        형상을 흉측하게 만드니 우리는 자연을 해부하기 위해 살해 한다’고 비평하였
        광주시 구도심의 언덕 위 양림동의 한 미술관에서 판화가 정순아의 초대전         다. 정순아작가의 자연 속에 거니는 들판의 메시지는 더 이상 인간의 욕망에
        이 개최 되었다. 판화가 정순아는 한국화를 전공 하였으나 자신만의 작업세        피폐해지지 않는 성숙한 삶의 아버지의 모습이길 소망하고 있다.
        계를 천착해 가는 과정에서 판화를 통한 표현의 다변적인 매력에 이끌려 표
        현 방식의 전환을 가졌으며 판화가로의 동거를 이룬 뒤 어느덧 중견의 판화        “세상이 멈춰 선 듯 한 순간에 왜 현대인들은 그토록 바쁘게 살고, 자연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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