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8 - 전시가이드 2021년 09월호 이북
P. 38
김구현 컬럼
(좌)이성자 -천년의 고가-1962년, 캔버스에 유채, 196x129.5cm, 이건희 컬렉션 (우)이성자 -오작교- 1965년, 캔버스에 유채, 146x114cm, ⓒADAGP
1978년, 1988년 대규모 초대전을 치른 바 있다. 작고 직전인 2008년에는 경남
에스프리누보 도립미술관에서 200점 넘는 대표작들로 역대 최대 개인전을 치르기도 했다.
새로운 정신 이런 전례를 고려한다면, 2018년의 회고전은 사후 처음 열리는 ‘대규모 기획
전’이었다. 이성자 화백은 프랑스 화단에서 50년 이상 활동했고, 현지에서 가
장 높은 평가를 받은 재불작가로 꼽힌다. 색채와 곡선의 율동을 강조한 오르
피즘의 대가 소니아 들로네, 유기적 조각의 거장 장 아르프와 친교를 맺었고,
글 : 김구현 (AIAM 미술 경영연구소 대표)
누보 로망의 거장 미셸 뷔토르와는 시화집을 잇따라 내며 깊은 인연을 이어갔
다. 이성자 화백은 70회 이상의 개인전 및 300회 이사의 단체전을 전세계 각
2018년 3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한국 근·현대미술사에 방점을 지에서 개최한 열정과 의지의 작가였다. <에꼴 드 파리> 소속 유일한 한국 화
찍은 여성거장의 전시회가 국내화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성자(1918~2009) 가인 이성자 화백은 또한 타피스트리, 모자이크, 도자기 등의 작품 활동도 했
화백의 탄생 100돌 회고전 타이틀은 『이성자: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로 정 다. 1951년 프랑스로 건너가 본격적인 창작활동에 들어간 이 화백은 유화, 목
해졌다.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도불 시절 이후 평생에 걸쳐 그녀가 추 판화 비롯, 70년대 이후의 도자기 등 모든 조형작품에 동양적 향취와 이미지
상그림을 그리며 쌓아 올린 거대하고 다채로운 시공간을 추적해서 펼쳐놓은 를 담은 방대한 규모로 꾸준히 제작했다. 그녀만이 표현할 수 있는 한국적 사
대서사시. 한마디로, 동시대의 총체적 고난과 역경을 자력으로 헤쳐나간 흔적 상과 시정은 프랑스 미술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그 흐름 속에 합류되
이자 현대판 ‘페미니즘’의 실마리를 잉태한 산실이었던 셈이다. 었고 유럽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의 본보기가 되었다. 특히 ≪파리 시립 미술
관≫장이자 저명한 ‘미술비평가’였던 J. 라세뉴는 “이성자씨는 자신의 동양적
이성자 화백은 51년 남편의 외도로 결혼 12년 만에 가정과 세 아이를 포기한 인 유산에서 나온 오묘한 성격을 그대로 간직한 채 서양미술의 흐름 속에 용
채 프랑스로 떠난다. 혈혈단신 미술을 배우며 현지 화단에서 전시 등으로 인 기 있게 합류하는 본보기”라고 호평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대표적
정받았다. 65년 열린 첫 국내 소개 전 이후로는 고국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작 인 시인인 미쉘 뷔토르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동양의 예술가로써『동녘의 대사
업했고, 2009년 작고하기 전까지 1만4000여점의 작품을 남기며 파리 화단에 (ambassadrice de l'aube)』라는 애칭을 얻기도 했다. 이성자의 작품 세계는,
서 가장 성공한 재불작가이자, 한국 추상회화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다. 동양 작품의 재질을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구상과 추상이 작품에 동시에 보여졌
음양사상을 바탕으로 한국적 이미지들을 서양의 추상사조에 접목시켰다는 던 초기의 ‘구상과 추상’ 작품을 거쳐, 대지에 대한 관심이 경작의 모습으로 반
게 평단의 일반적 평가다. 이성자 화백은 이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1970년, 영되어 어머니가 자식을 길러내는 듯한 모티브를 표출하는 <여성과 대지> 시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