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3 - 전시가이드 2021년 09월호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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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통크스, <부상병(치료 전과 치료 후)>, 파스텔화, 영국왕립의대









            lies(1882~1960))를 만나게 됩니다. 길리스는 통크스보다 20살이나 어리지만   부상자의 사진은 철저히 공개하지 않았지만, 팔 다리 부상 사진은 종종 보도
            손재주가 탁월하였으며, 그림 역시 잘 그려 통크스와 잘 통하여 바로 친한 사      되었고, 특히 보철을한 사지 사진은 오히려 매혹과 아름다움의 대상이 되었던
            이가 될 수 있었지요. 길리스는 영연방 정부에 안면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일반 외과 의사들은 치료 방법을 몰라 당황했
            외상의료전문센터가 긴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수차례 요구했고, 이에 1916년       습니다. 일반적인 방법은 단순히 함몰된 부분의 가장자리를 잡아당기고 바늘
            에 외상의료전문센터가 문을 열게 되었을 때 이 병원의 수석 외과의사로 임명       로 꿰매서 그 이후 자연치유를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었지요.
            되었습니다. 성형외과에 흔히 걸려 있는 ‘비포 앤 애프터 사진’을 많이 보셨을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효과적인 병원 홍보 방법 중 하나이지요. 그래서 일부      길리스는 외모에 더 민감하다고 생각되는 프랑스인들이 오히려 성형수술의
            성형외과에서는 이 때문에 사진 제작에 열을 올리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       미학적 측면을 무시하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할 정도였습니다. 길리스는 전
            지만 이것은 원래 통크스와 길리스에게는 매우 힘든 고난의 과정이었습니다.        쟁 중에 관찰하고 연구한 치료법을 현대화하여 ‘이상한 새로운 의술’인 성형
            길리스의 요청에 의해 통크스가 그린 부상병 치료 전과 후의 모습은 세계 최초      외과를 탄생시킨 장본인입니다. 그리고 통크스는 그의 성형수술 전과 후를
            의 의학적 비포 애프터 비교 그림일 것입니다. 통크스와 길리스의 협력은 전시      스케치로 남겨 기록하고, 그의 성형 수술이 발전하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
            영국의 상황에서, 그리고 예술과 수술의 관계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많습니다.      던 것입니다.
            통크스와 길리스가 재건 수술의 차원을 미학적 차원으로 높이는 데 기여했다        통크스는 1930년에 은퇴할 때 정부로부터 그의 공을 인정 받아 기사 작위 수
            는 것이고, 통크스의 외과 훈련과 경험으로 인해 성형 수술의 육체적 관점과       여를 제의 받았으나 거절하였지요.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던 사람이었던 것 같
            심미적 관점이 매우 잘 접목되었다는 것이지요. 당시 ‘심하게 일그러진 부상       습니다. 그는 대신 타임지에 성형 수술 그림에 대한 기사를 계속 썼고 그림도
            병’은 애국의 상징적 인물이었지만, 부상당한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금기였습       계속 그렸습니다. 1936년 테이트 미술관에서 회고전을 했는데, 이는 영국에서
            니다. 당시 전쟁 중에 하나 이상의 사지 절단이 있는 영국 부상병은 41,000명   윌리엄 터너 다음으로 생존 화가로는 두 번째 영광의 전시회였다고 합니다. 추
            인데 비해 약 60,500명의 부상병이 머리 또는 눈에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럼    함을 새로운 미학으로 승화시킨 화가 헨리 통크스는 의사로서가 아닌 종군 화
            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변형된 부상병의 사진은 전쟁의 공개적인 언론 사진 보      가로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화가입니다. 그리고 존 래버리와 윌리엄 오펜
            도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문과 잡지 기사도 거의 예외가 없었습니다. 얼굴      도 잊지 말아야 할 제1차 세계대전 종군 화가였습니다.
             이 코너는  칼럼니스트의 의도하는 바를 존중하며 경어체를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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