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8 - 샘가 20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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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파도

                                               김필곤(열린교회 담임 목사, 기독시인)



               예고도 없이
               검은 숨을 품고 와
               파도가 발목을 삼킨다.

               내일을 장담 못 할
               이 모래의 삶에서
               존재란, 흔들리는 돛대를 붙잡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닻에 온몸을 기대는
               믿음이다.


               무심한 파도, 다시 밀려와
               발자국을 삼키고
               세상은 제 길로 흘러 아득한데
               나는 왜 이곳에 홀로 섰는가
               질문은 모래알처럼 쌓인다.

                                            내 힘으로 가를 수 없는 파도가
               삶이란,
                                            온 세상을 삼키듯 덮쳐와도
               스스로 파는 우물이 아니라
                                            그 바닥 더 깊은 곳, 보이지 않는 손이
               아득히 들려오는 부름에
                                            나를 끝내 붙들고 계셨으니
               조용히 귀 기울이는 응답이다.
                                            죽음 앞에서 다시 설 용기를,
               마지막 파도가 죄의 무게로
                                            공허의 물결 속에서 길을 찾을 용기를,
               어깨를 짓누를 때,
                                            죄의 물살 아래 사랑받을 용기를,
               비로소 나는 깨닫는다.
                                            우리는 그의 바다에서 얻는다.
               먼저 나를 안아 올린 따스한 품을
               그 품에 안겨 이미
                                            믿음이란,
               모든 것이 씻겨졌음을
                                            거센 파도를 막는 방파제가 아니라
                                            그 소용돌이 속에서도 끝내
                                            가라앉지 않는 영원의 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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