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6 - 샘가 20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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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
김필곤(열린교회 담임 목사, 기독시인)
거친 해변의 가장 끝자리
더는 물러설 수 없는 땅에
묵묵히 제 몸을 묻고
성난 파도가 울부짖으며
쉼 없이 온몸을 할퀴어도
결코 물결에 잠들지 않습니다.
제 몸이 부서지는 아픔으로
거대한 물결을 막아서고
상처 난 땅을 지켜내지만
물살이 잠시 멎은 자리엔
작은 생명들이 숨어들도록
기꺼이 틈을 내어줍니다.
오랜 세월을 온몸으로 견뎌 부서진 바위 조각은
깎이고 닳아버린 흔적마저 다시 단단한 모래가 되어
해변의 일부가 되게 하고 발밑의 땅을 채우고
시간의 끝자락에선 바위는
날카로웠던 모든 모서리를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미련 없이 파도에 맡깁니다. 그저 제 경계를 지키지만
언제나
그 우직한 등 뒤에서
새로운 땅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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