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9 - 샘가 202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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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디게아 교회는 외부로부터 특별한 핍박을 받지 않았고, 경제적인 어려움도 없
었습니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최악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14-19) 라오디게아는 무역이 발달했고, 좋은 양모를 생산하
고, 금융업이 발달하여 모든 시민이 부유했습니다. 또한 이곳은 좋은 안약을 조제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돈이 최고인 지역이었습니다. 본 단락에서 예수님
이 참된 증인이요 창조주로 등장하시는 것이 의미가 있습니다. 차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세상에 속하여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
을 상징합니다. 반면에 뜨겁다는 것은 믿음의 열정으로 뜨거운 것을 상징합니다(눅
24:32). 따라서 차지도 덥지도 않다는 것은 완전히 세상적이지도 않고, 영적이지도
않은 어정쩡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도일지라도 참 신앙을 소유하지 못하면 토하
여 버려지듯 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는 경고입니다. 라오디게아 교인들은 물질적
부요를 영적 부요로 착각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들은 부의 일부를 바치고 자신
들을 영적으로 부요한 자라고 여겼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판단은 라
오디게아 성도들과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은 실상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안
일주의에서 벗어나 신앙의 연단을 통해 참된 부요의 흰옷을 입고 자신들의 수치를
가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은 양모로 몸을 감고 다녔으나 영적으로는 벌거벗고 죄
의 더러움을 다 드러내 놓왔던 것입니다. 그들은 세상적이고 물질적인 것에만 관심
이 있었지 영적인 것, 신령한 것에는 무관심 했습니다.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자기 죄를 자백하고 예수님의 보혈로 속죄받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20-22) 여기에서 문은 마음의 문입니다. 예수님은 회개
조차 하지 못하는 라오디게아 교회를 찾아오셔서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서서 두드
리노니”에서 서서는 현재완료형이고, 두드리노니는 현재형입니다. 예수님은 오래
전부터 서 계셔왔고, 지금도 계속하여 두드리고 계십니다. 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을 것이라는 말씀을 통해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되는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라오디게아 성도들에게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명하신 것처럼 회개
하고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피트 드러커는 ‘의사소통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이 말하지 않은
소리를 듣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청의 최고 단계는 말하는 상대방의 의도, 감정, 느낌, 상황 등을 고
려하며 상대방이 말하고자 하는 숨은 욕구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의사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가지고 있
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녀와 의사소통을 잘하려면 권위의식을 내려놓고 수
평적 관계에서 대화하고,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하며, 입이 아닌 가슴으로 말하라고 합니
다. 서로의 생각과 뜻이 서로 통하기까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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