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2 - 전시가이드 2023년 04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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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영의 작품세계
등용문(登龍門, Gateway), Canvas+mixed media, 60.3X91cm 그리움3(Longing), Canvas+mixed media, 72.8X117cm
든 약들이 가지고 있는 치료성과 해독성의 이중적 아이러니다. 한때 생명을 다. 단순히 그가 그려낸 산이나 나무, 꽃들의 아름다운 모습의 시각적 만족만
살렸던 약들도 시간이 지나면 폐기된다. 캡슐 속에 있었던 하얀 가루들은 모 이 아니라 보는 이들에게 새로운 생각을 요구하고 있다. 이성영은 버려지는
두 쓰레기로 버려진다. 우리의 삶도 그렇게 때로는 폐기되고 유통기한을 다 공캡슐을 화려하게 회화로 전환시켰다. 버려지고 잊혀졌어야 하는 대상들을
할 것이다. 새롭게 기억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잃어버려야 했던 것, 폐기되
어야만 했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상념을 불러일으킨다. 그런 점에서 이성영
이렇게 버려지는 공캡슐을 모아 이성영은 화면에 붙이고 아름답게 채색하고 의 채색된 공캡슐은 또 다른 치유의 상징일 수 있다.
그 위에 꽃과 나무, 산이나 강들을 그린다. 폐기될 뻔한 공캡슐들은 이성영의
화면에서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우리의 선입견이 고정시켰던 사 공캡슐은 하나하나 공들여 붙여진다. 많은 시간이 필요한 노동 같은 작업이
물들의 규정된 존재성이 다르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약이었던 캡슐이 이제 다. 비어 있는 공캡슐은 간혹 세상에서 자신의 본성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자
는 예술이 되었듯 흐르는 계곡물은 간혹 나무들 속으로 들어가 생명이 된다. 화상 같기도 하다. 화사한 채색은 그러므로 문득 처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
나 작가는 하나하나 공캡슐의 존재성을 주장하듯 꼼꼼히 눌러 붙이며 새로
우주 만물은 모두 본성이 있으나 또 다른 환경을 만나면 새로운 모습으로 진 운 모습을 만들어 낸다. 공캡슐의 또 다른 소임이 주어진다. 그 위에 그려지는
화한다.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에 대한 이성영의 의문들이 그가 만든 공캡슐의 꽃이나 나무, 산들의 또 다른 들판이 되어 그들을 담아낸다. 화려한 부활이다.
작품들에서 새로운 의미로 피어나고 있다. 한때 우리를 치료했던 캡슐약들이
단호히 버려졌듯이 현재의 우리도 새로운 것들에 지나치게 열광하면서 간혹 이런 이성영의 회화적 방법론은 동양미학의 목표가, 단순히 물질에 대한 아
중요한 것들을 마구 버린 것은 아닌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도 유통기한을 적 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자들에게 우주나 삶에 대한 이야기, 현
용한 것은 아닌지, 오늘의 나는 약물 중독자처럼 이 순간의 황홀한 기회만을 재 상황에 대한 철학적 질문들을 그림을 통해 구현하고자 했던 태도와 동일
탐닉하는 것이 아닌지 - 이제는 그 소임을 버리고 화면에 화사하게 물들여진 한 대목이다. 즉, 다양한 조형 형식을 구사하고 있으나 내용의 방식은 매우 동
공캡슐들의 모습은 관객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양미학적 관점이다. 이것이 한편 이성영의 오브제 추상이 이 시대의 팝아트
류와 차별화되는 지점이기도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영의 캡슐 작품들은 한편 감상자들에게 새로운 처방전일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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