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9 - 전시가이드 2023년 04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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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 자료는   cr ar t1004@hanmail.ne t  문의 0 10-6313- 2 7 4 7 (이문자 편집장)
                                                                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다. 손이 잘 넘어간다하여 뽑힌 무용부에 걸스카우트, 가야금 연주 활동은 바      운동회 날 내 딴엔 힘껏 달리는데도 항상 제자리걸음이었던 나였다. 누군가
            쁘다는 요즘 아이들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수룩한 촌티를 말끔히 벗어던         하나, 둘. 하나, 둘 구령을 붙이며 뒤따라 오길래 돌아보니 그녀였다. 걷는 건
            지게 했다.                                          지, 뛰는 건지 아리송한 내 달리기 실력이 안타까웠나 보다. 눈이 마주치자 웃
            무용 연습 때나 대회 때 무대 중앙에 서기 마련이었는데 언제나 짝꿍이 그녀       음이 터져 멈추는 바람에 구경하던 아이들과 부모님들의 폭소가 터지고 선
            였다. 하얀 발레복을 입고 깡충거리거나 색깔고운 한복을 입고 꼭두각시 춤을       생님께서도 호루라기를 든 채 입천장이 드러나실 만큼 웃음을 토해내셨다.
            출 때도 생긋 웃으며 눈을 마주쳐야 하는 것도 그녀였다. 심지어 같은 반이다
            보니 우리는 늘 붙어 다녔고, 골목은 달랐어도 집도 가까워 시도 때도 없이 오     그러나 그 따뜻하고 정이 넘쳤던 그녀와의 싱그러웠던 시간들은 오래가지 못
            고가는 떼어 놓을 수 없는 단짝이었다.                           했다. 6학년 1학기 어느 날, 그녀와 그녀의 가족은 무성한 소문만 남긴 채 사
            비교적 부유했던 그녀의 집엔 당시 귀했던 텔레비전이 있어 초저녁에 시청을        라져 버렸다. 찾아간 그녀의 집엔 설익은 열매를 툭툭 떨어뜨리는 감나무만
            하곤 했다. ‘그랜드 쇼’란 프로에서 나팔바지를 출렁이며 춤추던 무용수들이       나를 반겼을 뿐이었다.
            생경하기만 했던 것이 지금도 삼삼하다.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날은 고무       상실의 아픔은 점점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졌고, 그녀와의 인연도 아주 끊어졌
            줄치기를 즐기고, 커다란 감나무 아래 놓인 평상 위에 누워 나날이 커지는 푸      다 여기며 살아온 24년이란 햇수였다. 그런데 이렇게 깊게 패인 세월의 골을
            른 감을 쳐다보며 무슨 얘기가 그리 많았던지. 한겨울에는 선머슴아들마냥 빈       뛰어넘어 다시 찾아오다니…. 결국 만날 인연은 만나게 되어있나 싶다. 그동
            택지에 고인 물이 꽁꽁 얼어 생긴 얼음판 위에서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팽이도       안 고생하며 일구어낸 그녀의 삶도 멋지기만 하다.
            지치고 썰매도 탔다. 먼 거리를 걸어 중앙동 우체국 건너편에 있던 그녀의 아      서랍을 정리하다 발견한 옛 기록을 보며 과거를 떠올린다. 마치 어제 같은 재
            버지께서 경영하는 털실. 면제품 등을 만드는 공장에 찾아갔던 기억도 새롭다.      회였는데 헤아려보니 어느새 26년이란 시간이 또 흘렀다. 불현듯 그녀의 목
                                                            소리가 듣고 싶어 전화를 건다. 언제든 담담하게 서로를 응원하며 마음을 주
            무용발표회 날, 미장원 아주머니가 해주신 예쁜 머리손질과 화장에도 불구하        고받을 수 있어 좋다. 이제와 보니, 함께 공유했던 시절과 너무도 다른 분야를
            고 학교화단에 함초롬히 피어 있던 들국화를 꺾어 서로의 머리에 꽂아주며 친       선택한 우리의 길이라 생각했는데 결국은 편집장과 수필가라는 예술을 사랑
            구의 모습이 더 예뻐 보였으면 하는 바람이 투명한 가을 햇살보다 더 고왔다.      하는 공통점으로 닿아 있다.
                                                            우리들 삶은 만남과 이별의 연속성 안에서 짜여가는 베와 같다. 그녀와의 관
                                                            계처럼 안온한 휴식을 취하듯 재충전되는 마음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만남이
                      •한맥문학 신인상 등단(1994)                    라면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광주문인협회 회원                            ‘항상 건강해야 해’. 서로를 염려하며 전화기를 내려놓는다.
                      •광주문학 현 편집위원
                      •'월간전시가이드 쉼터'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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