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48 - 전시가이드 2023년 04월 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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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가이드 쉼터


        오랜 인연


        글 : 장소영 (수필가)














































        훌쩍 세월을 뛰어 넘었다. 초록초록 생기 넘실대던 소녀들은 어느 새 환갑을       미래, 희망의 순이라고 했다. 그동안 정신없이 살아내다 보니 불혹을 향한 발
        넘겼고, 눈가와 입가엔 자글자글 시간의 두께가 작은 계단을 만들며 쉬어가        걸음에 무게가 실려 가는 이 때, 잊고 살아온 친구와 다시 연결되는 꿈같은 현
        라 한다.                                           실이 일어난 것이다.
        짧은 만남, 긴 인연. 시간을 거슬러보자면 1996년 8월 어느 날. 더위에 지친 게  이내 막혔던 물꼬가 터진 것 마냥 가물가물한 기억도 선명해졌다. 초등학교 6
        으름을 치워내느라 다용도실 구석구석을 쓸고 닦으며 정리하고 있던 때였다.        년을 통틀어 단 하나 밖에 없었던 단짝 친구. 하얀 피부에 갈색 머리칼이 귀밑
        요란스레 전화벨이 울려댄다.                                 과 어깨사이에서 오락가락하고 웃으면 눈부터 접혀 눈이 초승달 같았던 그는
        “소영이니? 나 문자야.”                                  멋을 아는 활달한 소녀였다.
        설핏 알아볼 듯 낯선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다. 아무리 떠올리려        나의 국민학교 시절은 무채색에 가까웠다. 새로운 친구들과의 만남은 항상 낯
        해도 둔탁한 기억은 녹슬은 자물쇠 마냥 쉽게 열려주지 않는다. 이쪽의 침묵       설었고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는 데는 세심함이 필요했다. 물론 나름은 밝
        에 다급하면서도 서운한 감정이 묻어나는 그녀의 안타까움이 전해오는 찰나,        게 빛났을 여러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시기는 암울한 색채로 남
        퍼뜩 떠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아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그래, 너였구나. 너였어!”                                교육공무원이신 아버지의 전근과 이사로 짧게는 6개월 길어야 2년씩 머물다
        왈칵 목이 메어왔다. 그녀의 목소리도 울음으로 가득해졌고, 내 눈물은 땀과       전학을 다녀야 했기에 이렇다 할 친구는커녕 기억조차 뚝뚝 끊겨 어느 학교에
        섞여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오랫동안 깊숙이 묻어 두어 먼지가 겹겹이 쌓      서 있었던 일인지조차 명확히 구별이 안 된다. 그러나 5,6학년만큼은 맑은 아
        이도록 잊혀야 했던 우리의 시간을 초월한 만남이었다.                   침 토란잎 위에 또르르 구르는 물방울처럼 생기 넘치는 기억으로 남아 가끔
                                                        그 때를 생각하며 웃곤 한다.
        괴테가 말하기를 사람이 늙으면서 사라지는 것은 친구, 일, 재산, 지위, 성욕,    집안이 안정되다보니 학교생활이 즐거워 공부도 열심히 해 순위를 겨뤘던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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