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73 - 전시가이드 2021년 05월호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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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보도자료는  crart1004@hanmail.net  문의 010-6313-2747 (이문자 편집장)






























                    BURY THE TIME IN THE SEA 전남 보성2020, pigment print, 60×70cm  BURY THE TIME IN THE SEA 충남 태안2021, pigment print, 60×70cm






            들고 있다. 이는 사진에서 카메라의 장시간 노출 정도에 따른 효과이며 묘한       사체는 더없이 또렷하게 정지해 있고, 바다의 모습은 뚜렷한 경계 없이 포용
            이질감의 적정선을 작가가 그의 감각으로 세심하게 조율하고 있는 듯 보인다.       적이고 부드러우며 따듯하지만 신기루와 같은 허상을 동시에 품고 있는 작
                                                            품 속 분위기에서 작가가 그의 감각으로 치밀하게 조율하고 있는 예술적 진
            작가 박광린은 이번 ‘바다에 시간을 묻다’ 전시에 출품된 작품들을 작업하기       심을 읽어낼 수 있다.
            위해 그간 동해, 서해, 남해를 둘러 다니며 촬영을 진행했다고 말한다. 바다의
            어떤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었는지 궁금증은 커져 작업 여정 이야기를 이        고요하고 잔잔하지만 비현실적 묘한 긴장감이 서린 그의 작업을 두고 좀 더 진
            어 듣기 위해 기다리는데, 문득 ‘사진은 발로 찍는다’라는 말이 있다고 의미심     지하게 사진의 본질에 대한 담화의 농도는 더욱 짙어져 그와의 인터뷰는 진행
            장한 말을 띄우고 필자의 반응을 잠시 기다려주었다.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작      되었다. 온전하게 모든 걸 다 계산했어도 결국 최종결정권은 자연(환경)에 있
            가의 말 속에 담긴 저의를 인터뷰 흐름상 비교적 빨리 캐치했고, 작가가 의미      다는 체념 아닌 진심 어린 존중이 그의 본심으로서 오히려 겸허함으로 느껴졌
            있게 던진 그 말속의 중의적 진의를 또한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사진 작업      다. 광활한 자연을 정복이 아닌 진정 이해를 구하는 인간에게서 창출되는 예
            에 있어 피사체는 눈앞으로 와주질 않기 때문에 직접 무거운 장비를 들쳐 매       술은 그러지 않은 예술에 비해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잠재된 힘을 자연은 선
            고 대상을 찾아가야 한다는 말을 중의적 해석으로 열어놓은 재치 있는 그들만       사해 준다. 자연을 제어하거나 정복하려는 마음 대신 진심 어린 수용과 이해
            의 관용구인 것이다. 하지만 정작 더욱 큰 관건은 바삐 찾아가야 하는 물리적      는 자연이 가진 거대한 힘을 되레 얹혀 되돌려 받는 것이다. 한 폭의 수묵화가
            노고와 노동의 가치와 더불어 완벽하게 계산한 날씨와 시간을 염두하고 원하        그러하고 백자가 그러하듯.
            는 모습의 대상을 담기 위해 그들을 찾아갔어도, 예상을 뒤엎는 경우가 많기       광활한 자연을 향한 미물로서의 수긍과 깊은 존중, 그리고 물리적으로 자연스
            에 결국 수많은 변수를 안고 작업을 강행해야 한다고 작가는 진지하게 고백        레 흐르는 현상과 형상을 적확하게 기록하고 드러내려는 것 보다 그의 바다에
            한다. 치밀할 대로 극한까지 계획해 원하는 지점을 얻고자 하는 인간의 “예술      대한 본인의 정서와 시간을 묻으려는 이러한 실천은 작가 박광린이 모색하고
            적 욕망”은 원하는 결과가 도출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가능성을 열어두어 예       발견하여 포착하려는 그만의 예술적 본질로 읽힌다. 하나의 정답이라고 믿는
            측 안에서 가장 근사치에 도달한 작업이 작가에 의해 최선의 작품으로 간택되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추구하는 수많은 해답도 귀한 예술적 실천이겠지만, 그
            는 그 과정, 이것이 솔직한 창작의 과정일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계획하지 않     작가만의 고유한 예술 방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 결국 창작자들-만-이 담당해
            았던-혹은 못 했던- 변수들이 만들어낸 자연이 내준 경이로운 찰나의 표정을       야 할 무겁고도 신비로운 과업 아닌가.
            운이 좋게 포착한 기록은 사실 우연이 낳은 듯하지만, 엄밀히 보자면 그 한 컷
            뒤엔 켜켜이 쌓인-발 아픈-인고 과정들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 창작물에 대한       그가 가진 바다에 대한 감성, 아스라이 피어나는 잡히지 않는 뭉개진 바다의
            더 정직한 대변이 될 것이다. 사진작가를 포함한 시각예술가들이 내밀하게 경       형태와 공기의 흐름에도 꿈쩍 않는 무생물의 적확한 형상은 객관적 기록으로
            험하고 고군분투하며 스스로와 싸우는 지독히 외롭지만 엄청난 예술 생산 과        서의 사진-의 본질-은 아니다. 지극히 주관적이며 오히려 보이지 않는 형상
            정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을 만들어내 그 안에서 보이게 하는 그만의 예술 방식way이 작가 박광린의
            산골에서만 어린 시절을 보내고 중학생 때 바다를 처음 본 작가는 망망대해        작업의 본질일 것이다.
            를 동경하게 된 그 초심이 그의 사적이고 내밀한 바다에 대한 선망으로서 그
            의 작업에 특별함을 입히고 있다. 피사체인 바다를 열심히 쫓아 촬영하면서        작가 박광린에게 있어 이번 전시 “바다에 시간을 묻는다”는 의미는 어쩌면 그
            동시에 오로지 의도한 대로 호락호락 이미지를 내어주지는 않는 바다를 보며        가 발 아프도록 시도하고 있는 예술적 실천으로서 이 모든 의미가 함의된 것
            작가는 그의 카메라 안에 어떤 바다를 염두에 두고 담으려 했을까. 동적인 피      은 아닐까. 묻히고 물어보고 묻-어 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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