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94 - 전시가이드 2021년 05월호 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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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보는 전시




































        트라우마의 환상,  52 X 44cm, Oil on canvas, 1983       무제, 46 X 38cm, Oil on canvas, 1978






                             2021. 4. 2 – 4. 30 창동예술촌아트센터 (T.055-222-.2155, 창원)





         휴머니스트 괴암 김주석                                   도 하였다. 자유로운 곡선을 그리고 거기에 연상되는 그림을 그리면서 채색
        자유를 꿈꾸다                                         과 장식을 하면서 그림을 끊임없이 그려나갈 수 있는 자유상상화를 창시하
                                                        여 연구하다가 후배에게 물려주고 국민운동으로 발전되어 나가기를 기원하
                                                        기도 하였다.
        글 : 오창성(김주석기념사업회 이사, 오방사유운동본부장)
                                                        항일 운동가로서 김주석
                                                        경성전기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한 선생은 두 군데의 야학당에서 한글을 가르
                                                        쳤고, 그림을 그리거나 미술전시회를 보러 다니는 일로 친구들과 어울렸다. 교
                                                        내에서 일어 사용을 반대하다 두 번이나 정학처분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각종
        항일운동가이고 교육자이며 화가인 김주석 선생의 일대기 즉, 항일운동사와         계몽, 홍보활동도 하였는데 1942년 8월 여름방학 중에는 친구들과 함께 진해
        작품세계, 미술교육자로서 그가 창안하고 국민운동으로 주장한 자유상상화          에서 학도병 징용과 특공대 징발을 반대하는 계몽활동을 하였고 9월에는 우
        를 소개하고 그의 정신을 계승 발전하여야 할 사항을 새겨보고자 한다.          리글, 우리말 다시 찾기 운동을, 1943년 2월에는 서울과 진해에서 일어상용 배
                                                        격운동과 國語常用이라는 구호를 써 붙여 놓기도 하는 등의 일을 하다가 보다
        김주석(1927-1993) 선생은 누구인가?                        조직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느껴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으로 단식을 하면서 투
        선생은 경남 진해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김상조의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쟁의지를 다짐하다가 1943.1.3. 이일전의 하숙집에서 비밀결사조직인 학우동
        어릴 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하였으며 서예가인 외사촌에게 서예와 묵화          인회 항일결사대를 조직하였다. 헌병대에 연행됨으로써 조직의 실체가 발각
        를 접하면서 자라 초등학교 2학년때는 교내 미술대회에서 최고상을 받으며         되어 1944년 1월에 서울 하숙집에서 전원 체포된다. (이후 선생은 일본헌병에
        미술에 심취하면서 성장하였다.                                체포되어 갖은 고문에 시달리고 진해헌병대와 부산 서대신동형무소에서 미
        선생의 청년시절 마산은 6·25동란을 맞아 피난 온 유명 미술인들이 대거 유      결수로 1년 6개월을 복역, 다음 정식재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언
        입되면서 서울과 부산을 연결 짓는 문화의 꽃을 피운 요지가 되었는데, 선생       도받고 풀려났다) 작고하신 후인 2018. 8. 15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다. (전점
        은 주로 미술인 단체에서 실무적인 일을 총괄하고 기획하는 일에 앞장서기         석이 쓴 ‘일제 말기 괴암 김주석 화백의 삶’ 중에서 일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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