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30 - 2019년05월전시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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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작가
사랑가 120×120cm 비단에채색, 조각보 2019
본격적인 채색화 작업에 앞서 3개월간 춘향전 관련 문헌자료들과 영상자료들 하고 가문의 결정으로 남녀가 만나던 시대에 이들의 자유롭고 정열적인 사랑
을 수집하고 연구하면서 춘향전을 열린 마음으로 새롭게 이해하려고 노력하 은 매우 대담하고 파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였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내 시야에 점점 선명하게 다가온 춘향은 과거에 내
가 피상적으로 알고 있던 춘향, 대중매체를 통해 익숙해진 춘향과는 사뭇 다 춘향이 수절을 택한 이유
른 모습이었다. 내가 다시 만난 춘향은 단순히 봉건적 굴레에 갇힌 순종적인 그러나 이 순수한 사랑은 엄혹한 현실의 벽에 부딪히게 되고 이몽룡은 힘없이
열녀가 아니라 오히려 유교적 질서와 신분제라는 높은 담을 뛰어넘어 무엇이 부모를 따라 한양으로 떠나가고 만다. 홀로 남은 춘향은 이별의 아픔과 그리
진정 인간다운 삶인지, 무엇이 삶을 아름답고 고귀하게 만드는지를 치열하게 움을 견디며 스스로 수절을 택한다. <이별가>에는 춘향의 사무치는 그리움이
보여준 아주 용감한 소녀였다. 잘 나타나있다. 훗날 변사또가 기생의 딸이 웬 수절이냐고 비웃었듯이 그 당
시 양반댁 규수가 아닌 천기의 딸 춘향에게 수절을 강요하거나 기대하는 사람
자유롭고 열정적인 사랑 은 없었다. 오히려 신임 사또의 명을 따라 수청을 드는 것이 관례였다. 그럼에
춘향은 퇴기 월매와 남원 부사 성참판이 늘그막에 치성을 드려서 낳은 귀한 도 불구하고 춘향이 스스로 수절을 택한 것은 당시 유교적 질서와 운명에 순
딸이다. 하늘의 선녀가 품에 안기는 태몽을 꾸고 태어난 춘향은 어릴 때부터 응하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자신의 진실한 사랑과 신의를 지
총명하여 서책을 익히며 예의범절과 재주가 뛰어나 부모의 사랑과 주위의 칭 키려는 춘향의 단호한 결의와 진정성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찬을 한 몸에 받으며 자란다. 그러던 어느 봄날, 소녀가 된 춘향은 단오를 맞아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사또 자제 이몽룡을 만나게 된다. 열 여섯 살 동갑내기 차라리 죽음을 달라
소년 소녀는 한 눈에 사랑에 빠지게 된다. <사랑가>에서 보듯이 춘향과 몽룡 신임 사또 변학도는 춘향에게 변절의 댓가로 부귀영화를 약속한다. 그러나 춘
의 사랑은 어떠한 가식도 없이 솔직하고 열정적이다. 신분의 귀천을 떠나 이 향은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며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천한 기생에
들은 한 남성과 여성으로서 순수하고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다. 신분제가 지엄 게 무슨 충렬이 있냐는 질문에 춘향은 충효열녀에 어찌 상하가 있느냐며 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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