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9 - 2020년1월 전시가이드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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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12901 기우제등록 권5 수표 관측 기록
서울중구 수표교 옆 수표_PS0100100102001069600000_0
한 한국 천주교회 창립터이자, 약방거리 혜민서(惠民署)골이 인접하였으며 조
선에 들어온 청(淸)상인들의 삶터이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영희
전영건의궤(보물 1901-48호)에 의하면 수표교가 남부(南部) 훈도방(薰陶坊)
에 있는 영희전(永禧殿)으로 가는 통행로였음을 알 수 있다. 영희전은 태조 이
규14244 영희전영건도감의궤 바차도1
하 역대 왕들의 어진(御眞)을 모시고 제사 지내던 전각으로, 숙종에서 정조
대를 거치면서 종묘에 버금가는 왕실 조상의 공적 기념 장소로 자리 잡았다.
다리에서 만난 풍류는 18세기 당대의 지성으로 유명했던 박지원(朴趾源), 박
제가(朴齊家), 유득공(柳得恭), 이덕무(李德懋), 이서구(李書九) 등의 지식인들
이 모여 살았다. 이들이 지은 시 중 수표교가 등장하는「한객건연집」과 「강산초
집」을 전시한다. 북경에서 한국 최초로 영세를 받고 돌아온 이승훈(李承薰) 베
현재 청계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수표와 다리가 마치 현존하는 듯 한 드로는 1784년(정조8) 초겨울 수표교 인근 이벽의 집에서 신도들에게 첫 세
실감나는 체험의 기회로 전시 공간 한가운데 수표(복제)를 중심으로 례식을 거행하였고 이로써, 한국 천주교회의 신앙 공동체가 탄생했다. 조선시
천장을 제외한 벽면과 바닥 등 다섯 면에서 입체적인 영상으로 대까지는 시청에서 을지로까지 직접 연결되는 도로가 없었기 때문에 종로에
관람객의 몰입감을 극대화시킨 것이 특징이다. 서 수표교를 건너 이남의 혜민서골 약국 거리로의 왕래가 잦았다. 민간 약국
들은 ‘신농유업(神農遺業)’, ‘만병회춘(萬病回春)’ 등의 간판을 걸고 영업했다.
조선은 1882년(고종19) 임오군란(壬午軍亂)과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朝淸
商民水陸貿易章程)을 배경으로 도성 내에 청인(淸人)이 토지와 가옥을 소유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고, 특별히 수표교 주변은 청국인거류구역(淸國人居
留區域)으로 지정하였다
현재 청계천에서는 만날 수 없는 수표와 다리가 마치 현존하는 듯 한 실감나
는 체험의 기회로 전시 공간 한가운데 수표(복제)를 중심으로 천장을 제외한
벽면과 바닥 등 다섯 면에서 입체적인 영상으로 관람객의 몰입감을 극대화시
킨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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