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20 - 샘가 2025 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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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가지 끝에서 핍니다.
김필곤(열린교회 담임 목사, 기독시인)
울음은
말이 되기 전 땅속으로 스며들어
숨죽인 뿌리를 깨우고
침묵은
밤의 손끝을 따라 가지를 타고
서늘한 생김새로 내려앉습니다.
버티던 날들 위로
말라붙은 기억들이 쌓이고
무게는 끝으로 쏠려가고
보이지 않는 손이
묵은 결을 만지며
잠든 끝자락에 숨을 엽니다.
그 끝은
부러진 줄만 알았던 자리,
다시는 피지 않을 것 같던 경계였지만 꽃은
햇살보다 먼저
거기에서 어둠을 향해 고개를 들고
아무도 보지 않던 작은 기척이
눈에 띄지 않게 피어납니다. 가장 멀리 흔들리던 가지 끝에서
무게를 견딘 흔적처럼
연한 숨결이 색을 띱니다.
피어남은
늘 가장 끝에서 시작되고
꽃은 가지 끝에서 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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