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74 - 샘가 2025 7-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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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은 가을을 이기지 못합니다

                                               김필곤(열린교회 담임 목사, 기독시인)


               햇살은
               세상의 꼭대기에 앉아
               눈꺼풀 속까지 빛을 밀어 넣고

               매미는
               여름의 주인인 양
               터질 듯한 목소리로 시간을 찌르지만


               바람은
               언제나 먼저 조용히 도착해
               나뭇잎에 색칠을 합니다.

               햇살이
               아무리 높아도
               결국 그림자 쪽으로 계절은 기울고


               계절은
                                            계절은
               어김없이 자리를 바꿔 앉아
                                            서로의 자리를 정확히 알고
               세상은 무너지지 않으며
                                            불평 없이 흐르는데
               달력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세상 호령에 취해
               치매가 심한 여름일지라도
                                            떠나기 아쉬워
               가을 앞에선 조용히 눈을 감습니다.
                                            고집을 부린다 해도
                                            여름은
                                            끝내 가을을 이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스스로 작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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