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1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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Ÿ 홍  씨(洪  氏) : 본관은 남양(南陽), 규권(圭權)의 딸이며 삼척김씨(三陟金氏) 원연(源

                                          淵)의 처로 구호리(九湖里)에서 살았다. 나이 18세에 김씨 가문에 시
                                          집갔는데  처녀시절에도  효행이  있었고,  군자의  도를  본받아  시부모
                                          에게  정성을  다하여  효도하였으며  어른들의  명령에  복종하고  동서
                                          간에 우애가 있고 집안 사이에 다툼 없이 화목하였다고 친척들 모두

                                          말하였다.  나이  31세에  남편이  죽었는데  슬하에  딸만  있고  가문을
                                          이어갈  아들이  없으니  남편을  따라  함께  죽으려던  생각을  돌리고  3
                                          년  상을  치르고  조카를  양자로  들이고  딸을  시집보냈다.  머리  빗고
                                          사치하는  일은  멀리하고  길쌈내기  하여  집안을  일으켰다고  이웃  사

                                          람들이 감탄하였다.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만여(萬汝)의 딸이며 조병무(趙炳武)의 처로 노

                                          곡리(魯谷里)에서 살았다. 13세에 시집가서 시할아버지와 시부모를
                                          정성을 다하여 봉양하였고 그의 남편은 20여 년간 멀리 떠나고 없
                                          었기  때문에  과부나  다를  바가  없었다.  남편이  병을  얻어  돌아오
                                          니 3년간 시종여일하게 정성을 다하여 간호했다.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이병계(李竝桂)의 처이며 교가리(交柯里)에서 살
                                          았다.  어려서는  부모에게  효도하였으며  시집가서는  역시  시부모를

                                          정성껏 섬겼다. 나이 27세 때 남편이 죽으니 따라 죽으려고 하였으
                                          나  뱃속에  있는  유복자를  생각하여  슬픔을  참고  장례를  지냈으며
                                          그  아들이  출생하니  정성껏  잘  가르쳐  훌륭하게  키웠다.  도지사의
                                          표창장이 있다.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홍숙(弘淑)의 딸이며 이달우(李達雨)의 처로 금
                                           계리(金鷄里)에서  살았다.  시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였으

                                           며 남편이 병에 걸려 한 달 이상 앓고 누워 있으니 비바람도 가리
                                           지  않고  손수  산에  가서  약초를  캐어  달여  드리고  간호하였으나
                                           상을  당하니  남편을  따라  같이  죽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어머니가
                                           늙고  봉양해  줄  사람이  없을뿐더러  뱃속의  유복자를  생각하고  마

                                           음을  돌렸다.  슬픔을 참고 장례를 의식에 맞게 지낸 후  만삭이  되
                                           어 아들을 순산하니  그 아이를 기둥 삼아 시어머니 봉양하고  집안
                                           의 이름을 떨치니 관에서 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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