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7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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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통정대부(通政大夫)  기복(起福)의  딸이며,

                                               천곡리(泉谷里)에  살았다.  나이  18세에  진덕귀(陣德貴)에게
                                               시집갔다. 집안이 가난하고 시부모가 연로하여 부부가 칡뿌리
                                               를 캐고 도토리를 주어다가 부모님을 잘 공양하였다. 헌종(憲
                                               宗) 10년(1844)에 남편이 죽으니  예절에 맞게 장사지내고 그

                                               좋은  금슬  때문에  조용히  바다에  투신자살  하였다.  철종(哲
                                               宗) 2년(1851)에 열녀 표창을 받았다.

                          Ÿ 강    씨(姜    氏)  :  본관은 진주(晉州), 시학(時鶴)의 딸이며 삼척김씨(三陟金氏) 봉
                                               국(鳳國)의  처로  이천리(理川里)에서  살았는데  순조(純祖)조에
                                               열녀 표창을 받았다.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흥벽(興璧)의 딸이며 영일정씨(迎日鄭氏) 원
                                               영(源永)의  처로  송정리(松亭里)에서  살았다.  나이  25세에  남편
                                               이  출타하였다가  미친  사람을  만나  피해를  입고  돌아오니  비명

                                               으로 맞아 죽은 것을 통탄한 나머지 보복하였다. 고종(高宗) 24
                                               년(1877)에 부사 박헌양(朴憲陽)이 조세와 부역을 면제시켜주고,
                                               진사(進士) 정채화(鄭寀和)가 글을 지었다.

                          Ÿ 이소사(李召史)  :  본관은  우계(羽溪),  삼척김씨(三陟金氏)  정교(政敎)의  처로  평
                                               릉리(平陵里)에서  살았다.  남편이  고치기  어려운  고질병으로
                                               10여년이나  고생하고  임종에  다다르니  단지하여  수혈하였더

                                               니  3일간  회생하였으나  마침내는  한모금의  물도  입에  들어가
                                               지  않으니  구할  수  없었다.  성복  후에  자식에게  타일러  말하
                                               기를  만약  내가  죽거든  같은  구덩이에  같이  묻어  달라고  부
                                               탁하고  음독자살하여  남편을  따랐다.  고종(高宗)  28년(1891)

                                               가을에  유림에서  상신하니  승지(承旨)  한인호(韓麟鎬)가  임금
                                               에게  복명하여  열녀  표창이  내렸으며  공조판서(工曹判書)  정
                                               준화(鄭俊和)가 글을 지었다.

                          Ÿ 심  씨(沈  氏) : 본관은 삼척(三陟) 삼척김씨(三陟金氏) 인섭(仁燮)의 처로 지흥
                                               리(智興里)에서  살았다.  남편  병환에  단지  수혈하였고  돌아가
                                               시자  하루  종일  곡을  하다가  남편을  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시부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강력히 말리는 바람에 참았다. 시아
                                               버지께서  창병을  앓아  명산에  찾아가  기도를  드렸더니  호랑이
                                               가  특효약을  가르쳐  주어  구해다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  남편
                                               의  상을  당해서는  시묘살이를  하고  남편  제삿날에  같이  죽었

                                               다.  도백(道伯)  민영위(閔泳緯)가  열녀  표창하고  찬양하기를
                                               “남편이  죽어  같이  목을  매달아  죽었으니  열녀가  아니겠느
                                               냐? 시아버지의 가르침을 쫓고 정성을 다하여 받드니 또한 효



                                                                                     제7편  인물기(人物記)  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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