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2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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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효행(孝行) · 효부(孝婦) · 열행(烈行)






                □  효행(孝行)


                    Ÿ 김  겸(金   謙) : 참봉 방윤(邦潤)의  아들, 벼슬은 영흥교수(永興敎授),  나쁜  병
                                         에 걸린 모친에게 손가락을 잘라 태워 그 재를 먹였더니 병이

                                         나았다.
                                         선조11년(1578) 정여문을 세우고 부사 허목이 제사지냈다.
                    Ÿ 김구정(金九鼎) : 근덕면 교가리에 살았으며 모친이 병환으로 누웠을 때 손가락

                                         을  잘라 그  피를  입에  넣어드려  모친의  병을  고쳤다.  숙종  7
                                         년(1681)에 정여문이 내렸으며 통정대부로 추존되었다.

                    Ÿ 김옥권(金玉權)  :  구미리(九美里)에서  살았으며  사람의  근본은  하늘이라  믿고
                                         신을  감동시키도록  3년  동안  하늘에  기도하였더니  겨울철  백
                                         설  속에서  청사(靑蛇)를  얻어  마침내  4년간  고생하시던  아버
                                         지의  설사병을  고쳤고  아버님은  90세까지  장수하였다.  헌종

                                         (憲宗)  10년(1844)에  포상이  내렸으며  동몽교관(童蒙敎官)의
                                         벼슬을 받았다.

                    Ÿ 김흥일(金興一) : 호는 오정(梧亭), 감찰(監察) 계광(啓光)의 손자로 효가리(孝街
                                         里)에 살았다. 부친의 병환에 3년간 약을 닳여 간호하는데 조
                                         금도  게으르지  않았으며  장사  때  묘자리를  점장이처럼  쉽게
                                         잡았는데, 그 이유는 꿈에 한 노인이 지팡이로 묘지의 위치를

                                         그어주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  어머님을  섬김에  정성을  다했
                                         으며  김학조(金學祚)와  더불어  김씨  시조의  재사인  보본단(報
                                         本壇)을  지었으며  족보를  간행하였다.  호조참판을  증직  받았

                                         다.
                    Ÿ 김석조(金錫祚)  :  근덕면  교가리(交柯里)에  살았으며,  천성이  효도에  지극하여
                                         어머님  병환에  단을  모아  경건한  기도를  올렸더니  날짐승의

                                         이변이  일어나서  병을  고쳤다.  고종(高宗)  14년(1877)에  효
                                         자의 정려를 내리고 승지(承旨) 벼슬을 받았으며 호조판서 정
                                         범조(鄭範朝)가 글을 지었다.

                    Ÿ 김응규(金應奎)  :  동추(同樞)  종겸(宗謙)의  아들로  성내리(城內里)에서  살았으며
                                         호장(戶長)이었다.  어려서부터  어버이를  섬김에  몸과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모셨으며  아버지께서  설사병으로  고생하실  제

                                         지나칠  정도로  간호하였는데  상을  당하니  매우  슬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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