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1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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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충의(忠義)
Ÿ 김광유(金光裕) : 호는 돈재(遯齋), 공민왕 때 중랑장(中郞將)으로서 홍건적을
평정한 공으로 보리공신(輔理功臣)을 받았다. 우왕(禑王)이
등극하자 불사이군(不事二君)을 내세워 고향으로 내려와
은거하였다.
Ÿ 김 영(金 泳) : 밀직사사의 벼슬을 했다. 1392년 7월 고려가 멸망하자 송도(松都)
남쪽 불조현(不朝峴)에 올라가 관복을 벗고 패랭이 차림으로
두문불출했다. 태조 이성계가 여러 번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Ÿ 김 위(金 偉) : 도통사(都統使) 정휘(正暉)의 증손, 현령(縣令) 벼슬을 지냈다.
1455년(세조1)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의 녹을 받았다.
Ÿ 김려생(金麗生) : 좌익공신 2등(佐翼功臣 2等)에 책정되었고 진의부위(進義副尉)와
흡곡현령(歙谷縣令)을 지냈다.
Ÿ 김기문(金起文) : 임진왜란 때 왕을 의주까지 호종한 공로로 1604년(선조37)
호성공신 3등(扈聖功臣 三等)에 책정되었고, 진성군(眞城君)에 책봉
철권(鐵券)을 받았다.
Ÿ 김양필(金良弼) : 시어(侍御) 난손의 아들, 무과에 급제, 동래부사를 지낼 때 삼포의
왜란시 공로를 세워 선무공신(宣武功臣)의 녹을 받았다.
Ÿ 김양보(金良輔) : 김양필의 동생,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였다. 1604년(선조37)
판한성부윤(判漢城府尹)을 지냈으며 척주군(陟州君)에 책봉되어
노비, 전결(田結)등을 하사받았다.
제7편 인물기(人物記) 5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