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9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P. 549

의사는  출옥  후,  1924년  1월  28일,  서울  묵정동(墨町洞)  29

                                               번지  황금정에서  식사  도중  일경의  첩자에  의해  독살,  45세
                                               로 생을 마감했다.

                                            의사의  부친  김시영  또한  사유재산의  독립운동  자금  헌납,
                                               독립투사와  독일  선교사  등의  은닉  죄목으로  1918년  공주
                                               형무소에서  2년  옥고를  치르는  동안  김동호  의사와  함께  만

                                               세운동의  배후  조정자로,  또한  토지개혁을  반대하여  조선  총
                                               독을  상대로  제소한  국사범으로  왜경의  심한  고문으로  인한
                                               정신이상 상태에서 1932년 8월 18일 별세했다.

                                            정부는  부자의  애국충절과  공훈을  인정하여  1977년  대통령
                                               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기축대동보(己丑大同譜) 10권 440쪽에 등재되어 있음.>




                      〇  의사김상태(義士金尙台)


                          Ÿ 김상태(金尙台)  :  족보(族譜)  이름은  상호(尙鎬)요  호(號)는  백우(白愚)라  충북
                                               단양군  영춘면  남천리(忠北  丹陽郡  永春面  南川里)에서  출생
                                               (出生)하여  지조(志操)  굳은  인물(人物)로  문경(聞慶)에서  이

                                               강년(李康年)이  의병(義兵)을  일으키자  그와  형제(兄弟)의  의
                                               (誼)를  맺고  의병중군장(義兵中軍將)이  되여  여러번  전공(戰
                                               功)을  세웠다.  이때에  유린석(柳麟錫)이  제천(堤川)에서  의병

                                               (義兵)을 일으켜 크게 공(功)을 떨치니 이강년(李康年)과 더불
                                               어  유린석(柳麟錫)  진영(陣營)에  합류(合流)하여  활동(活動)하
                                               였으나  곧  유린석(柳麟錫)이  의병(義兵)을  해산(解散)하고  만
                                               주(滿州)로  망명(亡命)하자  그도  만주(滿洲)에  가서  3년간  종
                                               사(三年間  從事)하다가  귀국(歸國)하니  1907年  일제(日帝)의

                                               강압(强壓)으로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이  맺어지고  고종(高
                                               宗)이  퇴위(退位)하자  의분(義憤)을  참지  못한  그는  다시  이
                                               강년(李康年)과  함께  제천(提川)에서  의병(義兵)을  일으켜  중

                                               군장(中軍將)으로  문경(聞慶),  영천(永川),  원주등지(原州等地)
                                               를  전전(轉轉)하며  대소수십차(大小數十次)의  싸움에서  왜군
                                               (倭軍)을  격살(擊殺)하여  그의  신출귀물(新出鬼物)한  전술(戰
                                               術)로 왜적(倭敵)의 간담을 서늘케 하였다.







                                                                                     제7편  인물기(人物記)  549
   544   545   546   547   548   549   550   551   552   553   5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