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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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해 나의 황형(皇兄) 경종(景宗) 3년 계묘(癸卯. 1723년)에 명(命)이 다 해 죽었
는데 그의 나이 91세였다. 더욱이 상스러운 것은 그가 입궐(入闕)한지 8년이 되던 을
유(乙酉. 1645년)에 우리 황조(皇祖)께서 세자(世子)로 책봉 되시는 것을 보았고 77년
이던 신축(辛丑. 1721년)에는 내가 세자로 책봉의 명을 받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그의 충성(忠誠)이 그러했고 그의 수명(壽命)이 그러했으니 이 사실을 후인(後人)들
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는 기록이 없어야 되겠는가?
그가 또 멀리 중국을 바라보며 눈물을 삼킨 것은 명(明)나라가 망한 해가 바로 노궁
인(老宮人)이 태어난 해였기 때문이었다. 그의 평생을 차마 묻어 둘 수 없어 이에 기
록한다.
황조숭정기원후(皇朝崇禎紀元後. 130년) 정축(丁丑. 1757년) 영조(英祖. 30년)겨울 특명약기
김상궁전(金尙宮傳)
상궁(尙宮)은 삼척김씨(三陟金氏)로 증 판결사(贈 判決事)인 숭길(崇吉)의 딸이요 어
머니는 숙부인 해주 최씨(淑夫人 海州 崔氏)다.
숭정(崇禎) 6년 계유 인조(癸酉 仁祖) 11년(1633년)에 출생 4살 때 병자호란을 겪
었고 무인(戊寅)년 여섯 살에 궁인(宮人)으로 뽑혀 궁궐(宮闕)에 들어 와 인묘(仁廟)·
효묘(孝廟)·현묘(顯廟)·숙묘(肅廟)·경묘(景廟) 임금님을 차례로 섬기고 신축(辛丑.
1712년) 당시 임금께서 동궁(東宮)으로 오르실 때 슬퍼함을 보고 기이여겼더니 마침
91세의 나이로 계묘(癸卯. 1723년)에 운명하였다. 그 후 20년 임술(壬戌)에 상감께서
직접 지어 내려주신 사언팔구(四言八句)의 글에 말하시기를 나이 100세가 되도록 밤
낮으로 나라를 위하였다. 지금 옛날을 생각하여 중관(中官)을 시켜 나이가 높아 갈수
록 더욱 충성스러웠던 것을 내 일찍이 칭찬했었음으로 32글자의 글로 나의 마음을 표
하는 바 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어 중관(中官)을 보내 그 무덤에 제사를 지내도
록 하였다. 무덤은 양주(揚州)·초현(軺峴)에 있으며 또 정축(丁丑. 1757년) 겨울에
예관(禮官)에게 명(命)하여 정려(旌閭)하게 하고서 오조궁인(五朝宮人) 91세 상궁(尙
宮)·삼척김씨 정충지문(三陟金氏 旌忠之門)이라는 어제(御製)를 써서 내리셨다.
임금께서 지으신 기록인 그 사적은 포상(褒賞)의 뜻이 가득하고 열 가지 행실이 남
달리 기이하였음을 슬퍼 한 것이다. 신 익정(臣 益炡)이 입시(入侍)하라는 명(命)을 받
아 성상(聖上)의 교지(敎旨)를 친히 받들고 물러나와 그이의 제사를 맞고 있는 종백인
부장 김구중(部將 金九重)을 찾아갔다. 첨사(僉使)가 된 구중(九重)은 만청(滿淸)의 아
들이요 상궁(尙宮)의 종 증손(從 曾孫)이다.
546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