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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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6월 금수산성(山城) 싸움에서 패(敗)하여 이강년(李康

                                         年)이  왜군(倭軍)에게  체포(逮捕)된  후에도  그는  부대(部隊)를
                                         인솔(引率)하고  서기1911년까지  4년간  태백산(太白山)을  본
                                         거지(本據地)로  하여  항전(抗戰)하다가  불행(不幸)하게도  경북
                                         순흥(慶北  順興)에서  왜군(倭軍)에게  잡혀  삼년(三年)  형(刑)

                                         을  선고(宣告)받고  대구  감옥(大邱  監獄)에서  복역  중(服役
                                         中)  단식(斷食)  끝에  1912년  옥중(獄中)에서  순절(殉節)하였
                                         다. 정부(政府)에서는 1963년에 대한민국건국훈장(大韓民國建
                                         國勳章)을 추서(追敍)하였다.



                                                         <기축대동보(己丑大同譜) 10권 103쪽에 등재되어 있음.>




                ◯  의사김재수(義士金在壽)

                    Ÿ 김재수(金在壽) : 1919년 4월 13일 부구 사람 김일수는  일제 매일신보 구독으
                                         로 전국에서 3.1운동이 전개됨을 알고 김재수와 동네 애국청
                                         년  8명과  함께  의거할  것을  결의하고  강원도(현  경북)  울진
                                         군 북면 부구리 흥부시장에 들어가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동

                                         참할 것을 권유하자 이에 면민 다수가 참여하여 태극기를  들
                                         고  행진하면서  고성으로  대한  독립만세를  외쳤다.  출동한  일
                                         본  헌병과  격투  끝에  태극기는  몰수되고  현장에서  체포되어
                                         4개월의  옥고를  부산  형무소에서  치렀다.  사후에  이를  발굴

                                         하여  대통령표창(노태우  1992.8.15.)을  받았다.이를  기념하
                                         기  위해  경북  울진군  매화면의  기미  독립만세  공원과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흥부장터에  기미  독립만세  기념비가  세
                                         워졌다.  2001년도에  국가  보훈처로부터  국가유공자  증서를

                                         받았다.(김대중 2001.10.23)


























              550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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