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3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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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을 옮기려고 할 때, 관 밖으로 시체 썩은 물이 흘러나오니
관을 핥고 그 물을 빨아 먹으며, 영령이 바로 되기를 호소하
며 울었더니 흘러나오던 물이 그쳤다. 이 또한 신의 감응한
바라 할 수 있다. 그리하여 고종(高宗) 27년(1890) 가을에
효자의 정려를 내렸으며 군수 이구영(李龜榮)이 글을 지었다.
Ÿ 김진정(金振鼎) : 옥원리(沃原里)에 살았으며 그의 부친께서 알 수 없는 깊은 병
에 걸려 5개월간 약을 닳이고 간호하였으나 낫지 않아 아버지
대신 자기가 앓겠다고 하늘에 빌었더니, 꿈속에 신령이 나타나
약을 가르쳐주어서 병이 나아 몇 달을 더 연명하다가 돌아가시
니 예에 따라 장사를 치르고 너무 슬퍼한 나머지 뼈만 남았다.
고종(高宗) 29년(1892년) 여름에 동생과 함께 효자의 정려를
받았으며 이조판서 정기회(鄭基會)가 글을 지었다.
Ÿ 김진종(金振鍾) : 효자 김진정(金振鼎)의 동생으로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시
묘살이를 하면서 한 번도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 순조(純祖)왕
이 승하하시자 단을 모아 멀리 바라보면서 3년간 곡을 하였
다. 고종(高宗) 29년(1892)에 정려문이 내려지고 대사성(大司
成) 정구택(鄭九澤)이 글을 지었다.
Ÿ 김복운(金復運) : 나안리(羅雁里)에 살았으며 부친이 다리에 종기가 나서 고생
하시니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어 병을 고쳤으며 큰비로 집에
물이 침수하니 아버지를 업고 문을 나서는데 이미 마당에까
지 물이 차서 피할 수 없는지라, 기둥을 껴안고 호곡하며 우
니 얼마 후 물이 줄어서 목숨을 건졌다. 고종(高宗) 22년
(1885)에 승지(承旨) 윤상익(尹相翊)이 소문을 듣고 효자로
상신하여 정려문이 세워졌으며 숭록대부 예조참의(禮曹參議)
벼슬을 받았고 보국(輔國) 조병식(趙秉式)이 글을 지었다.
Ÿ 김종섭(金宗燮) : 이천리(理川里)에서 살았으며 아버지의 유훈에 따라 가난한
살림에도 정성으로 할아버지를 섬겼으며 악성질병으로 고생하
시니 온갖 정성을 다해 간호하고 하늘에 기도하였는데 돌아
가시니 노송을 붙잡고 얼마나 눈물을 흘리고 곡을 하며 울었
는지 그 나무가 말라 죽었다. 고종(高宗) 11년(1874)에 효자
의 정려가 내리고 동몽교관(童蒙敎官) 벼슬이 증정되었으며
송고(松皐) 김학묵(金學黙)이 글을 지었다.
Ÿ 김성성(金聖聲) : 부위(副尉) 근(瑾)의 후손으로 미로리(未老里)에서 살았으며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께 효성을 다하여 모셨다. 어머니 상을
당하여 3년 시묘살이를 마치고 초하루와 보름에 제물을 갖추어
제7편 인물기(人物記) 55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