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8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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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가 아니겠느냐? 그 인격을 종중하며 감탄하여 마지 않는
다”하였다. 고종(高宗) 6년(1869) 봄에 열녀각과 비를 세우고
찬정(贊政) 이재현(李載現)이 글을 지었다.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강릉(江陵), 형록(亨祿)의 딸이며 삼척김씨(三陟金氏) 시
학(始學)의 처로 송정리(松亭里)에서 살았다. 나이 25세에 약혼
을 하였는데 흉년이 들어 굶어 죽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그
의 남편이 양곡을 받으러 읍에 갔다가 실종이 되었다. 부모들은
다른 곳에 개가시키려 하였으나 이에 답하여 말하기를“이미 폐
백을 받고 약혼한 이상 마땅히 그의 처로서 죽어 그 귀신이 가
마를 타고 김씨 문중으로 들어가야 마땅하다”고 하여 홀로 수
절하여 64세에 돌아가셨다. 손자 대영(大榮)이 작은 비를 세웠
는데 이재현(李載現)이 글을 지어 찬양하기를“옛날을 우러러
보고 현재를 굽어보아도 이런분은 정말 보기 드물다. 뜻은 비록
칭찬할 만하지만 그 운명은 정말 가련하다. 부부의 위치는 정하
여져서 덕으로 합쳐진 귀신이니 누가 능히 빼앗으리오, 송죽 같
은 굳은 절개를.....”
Ÿ 강 씨(姜 氏) : 본관은 진주(晋州), 규환(奎煥)의 딸이며 삼척김씨(三陟金氏) 진
헌(鎭憲)의 처로 이천리(理川里)에서 살았다. 남편의 병환에 단
지 수혈하였으며 장사 후 6년간이나 소복과 소행으로 시부모를
착하게 봉양하였다. 대성원의 표창문이 있다.
Ÿ 김 씨(金 氏) : 이 정려각은 조선시대 병조참판(국방부차관)을 지낸 조옥립 장
군의 처 삼척 김씨의 효부심을 기리는 열녀문 정려각이다. 조
선인조 14년(1636년 병조호란)에 청나라 청태종이 조선을 침
입하였다. 이때 조옥립 장군은 경기도 중부 지역에서 관군을
통솔하며 싸우고 있었다. 강원도 관찰사 조정호 까지 조 장군
을 지원하지만 조선은 이미 전세가 기울어 지고 조 장군은 강
원도 인제에 까지 후퇴하기에 이르렀다. 가족도 경기도 양주군
풍양현(남양주시 진건면)에서 지리적으로 안전한 인제군 원대
리 인삼재 현 장소로 피신하였다.
이때 청나라 군은 조옥립 장군 가족 은신처로 찾아 와 부인
삼척김씨의 양손을 쇠로 구멍을 뚫는 등 온갖 고문을 해도
끝내 굴하지 않고 남편의 은신처를 말하지 않자 김씨를 장작
더미에 눕혀 불을 질렀다.
558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