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60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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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규행(閨行)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학간(學侃)의 딸이며 영일정(迎日鄭)씨 달화(達
                                    和)의 처로  송정리(松亭里)에서  살았다.  성품이  단정하였으나 가정
                                    이 빈곤하여  바닷물을 끊여  소금을  구워서  시부모를 봉양하였으며

                                    돌아가시자  예절에  맞게  3년  상을  치르고  남편이  병으로  누우니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에  빌며  간호하였으나  마침내  일어나지  못
                                    하고 죽으니 그 때 나이 39세였다. 너무도 슬퍼 죽고 싶었으나 포
                                    대기에  싸여  있는  두  아이가  있었으니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하고

                                    시묘살이  3년을  하였다.  사람들은  개가하라고  유혹하였으나  끝끝
                                    내  따르지  않았다.  자식에게는“먼저  일하고  나중에  글을  배우고
                                    생업에  힘을  다하면  가세가  점점  윤택해  진다.”고  가르쳤다.  모
                                    두가 그 덕을 칭송하였다.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감찰(監察) 김용배(金龍培)의 처인데 남편이 병
                                    으로  앓아눕자  정성을  다하여  하늘에  빌었으나  마침내  임종이  다

                                    다르게 되니  여러  시간  지절한 것을 옆의 사람들이 구호하여 주었
                                    다.  그 후 슬픔을  숨기고  굳게  참으며 예절에  맞게 장례를  지내고
                                    젖먹이  어린  아이를  잘  길러  조상을  봉양  하였고  집안은  점차로
                                    번창하게 되었다. 표창의 글이 있다.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상록(相祿)의 딸이며 증도사(贈都事) 정학영(鄭學
                                     永)의  처로  시목동(柿木洞)에서  살았다.  병인년(丙寅年)  겨울에  남

                                     편이  서울에  시험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도중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가서  시체를  관에  넣으려고  하니  시체가  얼어서  떨어지
                                     지  않자  3일간이나  시체를  안고  따뜻하게  녹인  뒤에  장례를  지냈
                                     다.  그  뒤  피눈물을  흘리며  슬퍼하였으며  매년  예에  맞게  제사를

                                     지내고 죽을 때까지 자식을 열심히 가르치고 집안을 일으켰다.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가선대부(嘉善大夫) 원민(源民)의  딸이며  김연

                                    효(金演孝)의  처로  용정리(龍井里)에서  살았다.  나이  22세에  남편
                                    이  죽으니  따라  죽으려  하였다.  집에  남아  있는  시부모를  생각하
                                    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예절에  맞게  장례를  치르고  시부모를  섬
                                    기고  봉양하였다.  돌아가신  뒤에도  정성껏  치송하고  자식을  가르

                                    쳐 입신출세 시키고 집안을 일으켰다.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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