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6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P. 556
시부모에게 효도하고 착하게 봉양하라는 유언 때문에 죽지
못하고 시부모를 남편 못지않게 예의 바르게 섬기다가 상을
당하여 예절에 맞게 장사 지내고 제사 지냈다. 그리하여 유림
에서 표창하였다.
□ 열행(烈行)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통정대부(通政大夫) 이주찬(李周粲)의 처로
교가리(交柯里)에서 살았으며 남편이 병으로 버드나무 밑에서
얼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체를 구하여 부지런히 집에 돌
아오니 때는 엄동설한이라서 시체가 꽁꽁 얼어 녹지 않아 14
일간 밤낮으로 껴안고 있으니 녹기 시작하였다. 함께 죽어 한
무덤에 묻히고자 하였으나 뱃속에 아이가 있으니 그렇게도
못하고 기다렸다가 그 아이를 낳은 뒤에 죽으리라 마음먹고
조용히 장사를 치렀다. 뒤에 뜻을 취할려고 하니 집안에‘서
리가 내린 이변’이 있었다. 철종(哲宗) 5년(1854)에 열녀
표창이 내리고 증손 한익(漢翊)이 글을 지었다.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우계이씨(羽溪李氏) 구연(九淵)의 처로 이천
리(理川里)에서 살았으며 나이 20세에 남편이 죽으니 끝까지
봉양하지 못하고 땅에 묻어야 했다. 슬하에 자식도 없는 것이
지극한 한이 되어 남편을 뒤좇아 같이 죽으려고 여러 날 밥도
먹지 않으니 시부모님이 보고 매우 슬퍼하고 회심이 컸다. 식
사 때는 남편 묘에 올라가 피눈물을 흘리니 제주와 눈물로 잔
디가 말라 죽었다. 그러다 시아버님께서 병으로 눕자 대신 죽
기를 원하며 빌었더니 꿈속에 노파 신이 나타나 침술을 가르
쳐 주어 은으로 크고 작은 침을 만들어 치료하여 병이 나았으
며 시어머님이 늙어 이가 다 빠지니, 엿과 사탕을 항시 준비하
여 드리고 병환 중에 강물의 생선을 잡숫고 싶어 하시니 얼음
을 깨고 붕어를 잡아다 드려 병이 나았다. 자식이 없어 조카를
양자로 데려다 키워 후사를 잇게 하였으며 나이 59세에 돌아
가셨는데, 고종(高宗) 6년(1869)에 열녀 표창이 내리고 이태규
(李泰奎)가 글을 지었다.
556 三陟金氏 宗史 總覽 修訂增補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