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55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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Ÿ 김재국(金在國) : 강원 홍천 성산에서 조상누대 농사지으며 살고 있다. 슬하에 아
들 둘 딸 셋을 두고 있다. 농촌에 살면서 자식을 정성스러히
길러 자녀모두 의학박사 교원 사업가로 국가 사회에 공헌하도
록 성장시켰다. 본인은 품성이 돈후(敦厚)하고 효성(孝誠)이 지
극하다. 선고(先考)는 조졸(早卒)하셨고 선비(先妣)께서는 모든
사람이 멀리하는 기동(起動)을 할 수 없는 와병(臥病)이나 지극
정성으로 돌보심으로 백일 세 천수(天壽)를 누리시게 한 효행
(孝行)의 본을 보였다. 이에 홍천 군수(洪川郡守)가 정부(政府)
에 효행자(孝行者)로 보고하였다.
정부는 2001년 5월 8일 어버이 날에 즈음하여 효행을 치하 하였다.(대통령표창, 표창번호132027호)
□ 효부(孝婦)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삼척(三陟), 경하(敬河)의 딸이며 전주최씨(全州崔氏)
병현(柄顯)의 아내로 상정리(上鼎里)에서 살았다. 시아버지께
서 가래가 많이 올라와 고생하셨는데 의원이 산돼지의 열이
좋다 하여 그것을 구하러 산에 들어갔다. 호랑이를 산돼지인
줄 잘못 알고 급히 가보니 호랑이가 산돼지를 잡아놓고 있어
그 열을 드렸더니 병이 나았다. 그리하여 효부 표창을 받았으
며 판서(判書) 김종한(金宗漢)이 비문을 지었다.
Ÿ 김 씨(金 氏) : 본관은 김해(金海), 학용(學用)의 딸이며, 삼척김씨(三陟金氏)
형동(炯同)의 처로 북평(北坪)에서 살았다. 시아버지가 함경북
도 덕원군(德源郡)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3년 후에
시신을 찾아 돌아와서 선산묘 아래 장사 지냈는데, 시체를 이
고 온 머리 부분은 머리털이 다 빠지었고 늙을 때까지도 머
리가 나지 않았다. 그 후에도 남편을 정성껏 섬겼는데 돌아가
시니 예절에 맞게 장사지내고 3년 복을 입었다. 유림에서 추
천하여 도지사의 표창을 받았다.
Ÿ 이 씨(李 氏) : 본관은 경주(慶州), 감찰(監察) 흥량(興량)의 딸, 증비서승(贈
秘書丞) 삼척김씨(三陟金氏) 학영(鶴英)의 처로 성품이 정숙하
였다. 시집가서 효도로써 시부모를 섬기고 예의로서 남편을
섬겼는데 불행히도 중도에서 남편이 병을 얻으니 대신 죽기
로 하늘에 기도드렸으나 소용없이 임종을 맞이하여, 착하게
부모님을 봉양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다. 입관하는 날
너무도 서럽고 원통하여 남편을 뒤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제7편 인물기(人物記) 5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