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8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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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의사(義士)





                〇  의사김동호(義士金東鎬)


                    Ÿ 김동호(金東鎬)  :  족보(族譜)  이름은  흥오(興五)  자(字)는  만대(萬大)  대호(大虎)

                                        동호(東鎬)  1879년  1월  16일.  강원도  삼척군  노곡면  하군천
                                        리  98번지에서  아버지  김시영(金時英)의  독자로  태어났다.
                                        1915년, 박상진의사 외 15명의 동지와 같이 광복단을 조직하
                                        여  재무부장  겸  기호(畿湖),  관동지역지부장으로서  항일운동

                                        을 전국적으로 전개하였다.

                                      1917년  1월,  경주  광양리  앞길에서  대구로  수송  중이던  경
                                         주, 영일, 익덕 세 지방의 세금 8천 7백 원을 탈취하여 무기
                                         를 구입하고 만주에 군사자금을 보냈다.

                                      1917년  1월  20일,  동지  김경태,  임세규를  시켜  친일파로  악
                                         명  높은  충남 아산군  도고면장  박용하를  처단케  했으며  같은

                                         해  11월  10일,  군자금  모금을  거부하고  구  왕실재산을  가로
                                         챈  경북 칠곡군  북삼면  장승원  집을  습격,  사형  선고문을  낭
                                         독케  하고  그  자리에서  사살하여  친일파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또한  무장단을  인솔하여  충남에  있는  일본인의  금광을

                                         습격, 금괴를 만주로 이송시켜 군자금으로 충당했다.

                                      조선총독부가  전국적으로  광복단  색출에  혈안이  되어있을  때
                                         1917년  12월,  첩자  이종국의  밀고로  서울  종로  어재하  집에
                                         서 동지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실형  3년을  선고  받은  옥중에서도  1919년  3월,  울진,  삼척
                                         의  만세운동과  여러  곳의  관공서와  헌병분소들을  습격한  배

                                         후 조정자로 지목되어 공주 형무소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다.

                                      1921년  5월,  형기  만료로  출옥한  후  종로  인사동에  거주하
                                         면서  일본에  있는  서양  선교사‘굴피’를  통하여  종교자금을
                                         받아 만주에 제공하기도 했다.

                                      1922년  당시  토지개혁  구실로  일제가  왕실재산과  국유지  찬
                                         탈  등에  대해 조선  총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으나  오히려

                                         국사범으로 몰려 다시 3년의 옥고를 치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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