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547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P. 547

성상(聖上)의  교지(敎旨)를  받들어  알게  된  것은  좋은  날을  가려서  정려(旌閭)를  하

                       라는  것이었다.  오호라!  상궁(尙宮)이  죽은  지  이제  35년,  몸이  가신  후  슬픔과  영화
                       (榮華)가  이와 같이  넓고  뛰어나게  이루어지게  된  것은  그이가  평상시  충성(忠誠)하고
                       부지런  했던  정성(精誠)을  운한(雲漢)의  글에  갖추어  기재해  두었다  함은  신(臣)이  어
                       찌 가히 헛된 말 이랴.

                        오! 즉 우리 성상(聖上)께서 옛 충성(忠誠)이 포상을 생각하고 멀리 내어주신 성덕(聖

                       德)은  정령  거룩하기만  하도다.  신(臣)이  장엄하게  읽어  보고  흠탄(欽歎)하였으며  또한
                       어찌 가히 한마디도 안 할 수 없어 끝으로 그때를 말하며 간략하게 기록해 두노라.


                                                        숭정기원후(崇禎紀元後) 일백삼십년(一百三十年) 정축(丁丑) 동(冬)
                                                        보국숭록대부(輔國崇祿大夫) 행(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겸(兼)
                                                                               예조판서(禮曹判書)  이익정(李益炡)


                        주(註)  :  상궁(尙宮)은  1633년(癸酉)생으로  6세에  입궐(入闕)하여  인조(仁祖),  효종(孝宗),  현종(顯宗),  숙종(肅宗),  경종(景宗)  5대
                             임금을  모셨고  향년  91세에  사망  묘(墓)는  양주  소현  입갈(立碣)  유정려(有旌閭)  기축대동보(인터넷족보)  제6권  815쪽
                             에 등재되어 있음.





















































                                                                                     제7편  인물기(人物記)  547
   542   543   544   545   546   547   548   549   550   551   5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