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603 - 종사총람 수정증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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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미상이라고  했다.  우계현은  고구려의  우곡(羽谷)현을  신라  경덕왕이  개명했으

                            며 지금의 옥계지방이다. 해리현은 고구려의 파리(波利)현을 경덕왕 때 역시 개명
                            했지만 미상이다.

                             신라가 실직국을 멸망시킨 다음 실직인들은 경북 울진 남쪽으로 옮긴 훨씬 후
                            에야  실직국은  고구려의  영토가  되었으며,  신라  지증왕  때  이사부(異斯夫)가  실
                            직주의  군주로  임명되어  파견됨으로써  비로소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지증왕  6

                            년,  서기  505년  이사부가  실직주로  부임하기  이전까지는  실직국의  세력이  아직
                            도  잔존하여  위협적인  존재가  되었을  것으로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실직국과
                            신라는  그만큼  적대  관계에  있었고,  파사왕이  실직국을  정복하고서도  4백여  년
                            동안 실직국의 명맥은 유지되었었다.

                             신라  파사이사금  때  패망한  실직국을  건설한  사람들을  실직인(悉直人)이라  부

                            르고,  임금을  실직왕(悉直王),  그  부족을  실직씨(悉直氏)라고  불러오고  있다.  물
                            론  지금은  실직씨라는 성씨가  남아  있지는  않다.  잃어버린  나라요,  잃어버린  왕
                            손이요, 또 잃어버린 성씨이다.

                             경북  울진군 서면에 왕피리(王避里)라는  마을이  있다.  왕피리에는  병위동(兵衛
                            洞) 임왕기(臨王基) 포전동(飽田洞) 거리곡 등이 있다. 통고천에서 발원하여 동해

                            로  흐르는  강을  왕피천이라  부른다.  옛  실직국의  안일왕(安逸王)이  예국(濊國)의
                            침략을 받아 지금의 소광리에 있는 안일왕성(安逸王城)으로 피난하여 버티었으나
                            성이 함락되었다.

                             이  마을로  실직국  왕이  피신하였으므로  이곳을  왕피리라  부르게  되었다한다.
                            왕피리의  병위동은  실직국  안일왕의  군사들이  머물렀던  곳이고,  포전은  군사들

                            이  밥을  먹던  곳이라  한다.  또  핏골은  왕이  적에게  붙잡힌  곳이며  거리곡은  실
                            직곡의 군량미를 저장하는 창고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이웃한  삼근리의  복두괘현(일명  박달재)은  안일왕성이  함락되자  왕이  신하와
                            옷을 바꿔 입고 도망하다가 이곳에서 복두를 쓰지 못하고 그냥 도망한 곳이므로
                            두건을 걸어 놓은 고개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왕피리의 전설은 실직국과  예국과의  관계를  설명해  준다.  실제로 실직국을 멸

                            망시킨  나라는  신라인데도  엉뚱하게  울진군  왕피리의  전설은  예국이  멸망시킨
                            것으로 되어있다.

                             신라와  예국이  뒤바뀌어  있는  것이  이  전설의  묘미이다.  실직국은  신라에  멸망
                            한  3년  후에  다시  봉기하여  부흥  전쟁을  전개한다.  그러나  신라군에  다시  패망한
                            다.  신라는  이에  실직국이  다시  모반할까봐  실직국  사람들을  모두  남쪽으로  옮긴

                            다.  실직국을  비워  놓고  신라  쪽으로  이주시킨  것이다.  왕피리  전설에는  실직국의
                            왕과 백성이 모두 삼척 남쪽 울진으로 내려와 피난한 곳으로 변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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