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14 - 삼척김씨 구호종중요람
P. 14
삼척김씨대종회
삼척김씨대종회
♦ 적 순부위 (迪順副尉)삼척김 공(三陟金公)묘갈명 (墓碣銘)
삼척 치소(治所) 북쪽 十五리 되는 구호(龜湖) 언덕 태좌(兌坐) 진향(震向)은 고(故) 적순부
위 삼척김공(三陟金公)의 무덤이다. 공의 휘는 종순(終淳)인데 그 선대는 본디 왕자(王者)의
후손으로 삼한벽상공신상주국좌승상(三韓壁上功臣上柱國左丞相) 휘 위옹(渭翁)이니 실직군
왕(悉直郡王)에 봉해졌는데 실직은 지금의 삼척으로 자손들이 이때부터 삼척인(三陟人)이
다.
여러 대를 거쳐 도통사(都統使) 대장군(大將軍)에 이르러 휘는 정휘(正暉)요 호부상서(戶部
尙書)의 휘는 해(偕)요 위위윤(衛尉尹)의 휘는 관(琯)이니 세를 이어 큰 벼슬아치가 나왔다.
위위윤이 중랑장(中郞將)을 낳으니 휘는 광유(光裕)요 중랑장이 부사직(副司直)을 낳으니 휘
는 승효(承孝)이니 이분이 공의 아버지이다.
공이 국초(國初)를 당해 세음(世蔭)으로 적순부위에 임명되었다가 돌아가시자 부인 강릉최
씨(江陵崔氏)와 같은 자리에 다른 봉분(封墳)으로 장례했다. 부인 최씨의 아버지는 대해(大
海)요 할아버지는 사정(司正) 운림(雲霖)이요 증조는 단천군사(端川郡事) 첨(瞻)이다. 아들
하나를 낳으니 무공랑 휘 세현(世賢)인데 배(配)는 안인(安人) 연기위씨(燕岐魏氏)이다. 그
가 아들 셋을 낳으니 효력부위(效力副尉)는 휘가 근(瑾)이요 배는 단인(端人) 밀양박씨(密陽
朴氏)요 수의부위(修義副尉)의 휘는 당(璫)이요 배는 단인 강릉최씨요 다음의 휘는 영이다.
근이 아들 셋과 딸 하나를 낳으니 아들은 진위장군(振威將軍) 주은(周殷)이요 다음은 상은
(商殷)이니 충좌위호군(忠佐衛護軍)이요 하은(夏殷)은 문행(文行)이 있었다. 배는 정부인 강
릉최씨요 사위는 남양(南陽) 홍확(洪確)이니 만호(萬戶)이다.
당(璫)이 아들 둘과 딸 하나를 낳으니 아들은 윤웅(允雄)과 윤영(允英)이요 사위는 참봉(參
奉) 강릉(江陵) 김인록(金仁祿)이다. 하은(夏殷)이 아들 둘과 딸 넷을 낳으니 아들은 형조
좌랑(刑曹佐郞) 성탁(聲倬)이니 배는 의인(宜人) 연일정씨(延日鄭氏)요 다른 아들은 봉화훈
도(奉化訓導) 성준(聲儁)이니 배는 의인 연일정씨이며 사위는 남대익(南大翼) 정사교(鄭師
僑) 정덕용(鄭德容) 진극충(秦克忠)이다. 윤웅(允雄)이 아들 셋을 낳으니 종계(宗繼) 종수(宗
壽) 종의(宗義)이다. 윤영(允英)이 아들 하나를 낳으니 기명(起溟)이다. 성준(聲儁)이 아들
여섯을 낳으니 진윤(震尹) 진열(震說) 진언(震偃) 진익(震益) 진문(震文) 진창(震昌)이다. 진
윤(震尹)이 아들 하나를 낳으니 빈(鑌)인데 예(禮)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명이 아
들 하나를 낳으니 찬(瓚)이요 찬이 아들 하나 딸 하나를 낳으니 익(釴)과 사위 호군(護軍)
강릉김시성(金始聲)이요 나머지는 다 기록하지 못한다.
지금 공을 장사지낸 지 이미 四、五백년이 되어 그 사행(事行)을 징험할 수가 없으나 이름
이 후세에 사표(師表)로 전하여 영원히 세시(歲時)의 제사가 끊어지지 않고 있다. 후손 일교
(—敎)(1825〜1879)와 세영(世榮)(1812〜? ) 등이 장차 묘도(墓道)에 비석을 세워 무궁토
록 전하고자 하니 효자(孝子) 자손의 마음 씀이 원대하다고 하겠는데 그러나 공의 쌓은 덕
이 오래 세상 사람에게 전해지지 않았다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는가? 시(詩)에 말하기를
「군자(君子)에게 효자(孝子)가 있네」라 하였고 또 「자자손손(子子孫孫)이 지켜서 이끌라」고
하였다. 四백년 동안 쌓아온 효를 지켜 이끄니 세상에서 만약 이렇게 한다면 비록 천백세라
도 알 수 있으니 이는 새겨 전할 만하다.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넘실거리는 동해(東海)
가에 구호(龜湖) 언덕이 길게 뻗쳤네. 그 위에 두 봉분이 있으니 덕 있는 선한 분의 묘이네.
비석을 세워 후세에 전하니 무궁히 효가 전하리라. 저 나무꾼들은 행여 허물지 말지어다.
병자년(1876) 10월 일에
-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