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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포루 복원정비공사 보고서
치미, 취두, 용두, 잡상은 지붕 장식기와로 그 모양이나 의미가 다르고 설치되는 위치가 다르다. 치미나
취두는 궁전, 불전, 또는 국가적 권위건물의 용마루 좌우, 또는 합각마루 귀마루 끝에 설치하게 된다. 주
로 양성 바름 지붕마루에 쓰인다.
용두(龍頭)는 용의 머리를 조각한 기와로 용마루 끝 또는 박공마루, 합각마루, 귀마루 끝에 설치하며 일
반 건물에는 사용하지 아니한다. 용머리는 이하 용두라 지칭한다. 용두는 대게 아구리를 크게 벌리고 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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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용수(龍鬚) 또는 용미(龍尾) 모양을 하고 있다. 이러한 용두의 설치 시 어떠한 경우에도 건물의 바
3)
깥쪽을 향하여 설치하게 된다. 동북포루의 『화성성역의궤』 문헌기록에는 용두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때문에 현존하는 망와 대신 용두를 복원하여 용마루에 올리도록 하였으며, 용두의 형태나 용두를 앉힐
자리에 관하여 면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화성성역의궤』에서 동북포루의 용두에 관한 기록을 2군데에서 볼 수 있다. 동북포루를 묘사한 부분
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동북포루는 각건대 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방화수류정 동쪽 135보 4척쯤 되
는 거리에 있다. 지세가 별안간 까맣게 높아져서 용두를 눌러 굽어보고 있다.’ 고 쓰여 있다. 재용(財用)
하(下)편에는‘ 보통 암 수키와 1누리 895장, 보통 암수막새 기와 34장, 용두머리 2개, 이상의 값이 돈으
로 쳐서 22냥 3전’ 이라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일관되게 용두머리 사용을 볼 수 있는 부분이다.
그 외에 참고할 만한 부분은 『화성성역의궤』와 『뎡리의궤』의 도설이다. 동북포루 각건대 외도(外圖)
와 내도(內圖)를 각각 살펴보면 지붕의 용마루에는 망와로 표현되어있어 기록과 도설에 차이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작은 지면에 그림으로 건축물 전반에 걸쳐 완벽하게 표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며 원칙적으로 그림보다는 기록에 좀 더 무게를 실어 따르는 것을 복원방침으로 하였다.
용두의 형태는 의궤에 그려져 있는 형태를 참고할 만하지만 회화적으로 표현된 그림을 실제 입체조각으
로 조영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현존하는 실물을 조사하여 기록에 있는 형태와 대조하고 시대
적으로 가장 근접한 시기의 용두의 형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수원 화성에 존재하는 건물에 남아있는 용두는 동시대에 제작하였으므로 동북포루 용두 복원형태를 추
정하는데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정된다. 다만 현존하는 대다수의 건물들이 70년대에 복원되었기 때문에
현재까지 존치한 용두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게다가 용두를 사용한 건물은 제한되어있다.
용두를 용마루에 사용한 사례는 유일하게 방화수류정에 한하며, 대다수 건물에서는 내림마루나 추녀마
루에 사용하였다. 현존하는 용두는 그 형태가 매우 제각각이기 때문에 많은 건물에 조영된 용두를 확인
하고자 하였다. 조사한 결과 용두를 사용한 현존하는 건물의 사례는 팔달문, 화서문, 서장대, 방화수류
정, 서북공심돈 등이 있으며 장안문은 6.25 전란으로 폭격되어 소실된 후 팔달문을 본떠 복원하였으므로
제외하였다. 용두의 형태는 같은 건물 내에서도 문양과 형태가 각양각색이며 서장대의 경우 용두는 입
안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이라 현재 의궤의 도설과는 차이가 크다. 또한 팔달문의 중층 지붕의 용
두는 의궤의 도설과 형태가 매우 유사함이 확인되지만 현존하는 건물의 지붕마루에 존치하기 때문에 직
접 실측을 하거나 형상을 떠내기 쉽지 않았다.
1) 용수는 용의 수염을 말한다.
2) 용미는 용의 꼬리를 말한다
3) 『한국건축대계』 기와, 장기인 저, 보성각 출판, 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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