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ge 82 - 동북포루 수리보고서-2020.최종
P. 82
동북포루 복원정비공사 보고서
하층바닥에서 상층바닥까지의 높이는 1.47m, 2층 바닥에서 처마도리 그레먹까지의 높이는 2.49m이며 기둥
의 전체 높이는 3.65m이다. 기둥은 24cm 각 민흘림이며 처마는 홑처마로 서까래 내밀기는 1.25m이며 민
도리 수장 오량집의 합각지붕이다. 하층 벽의 3면을 전돌로 쌓았으며 남측에는 계단을 건물의 외부에 설치
하여 상층에 오르내릴 수 있게 하였다. 하층에는 총안과 현안을 두었다. 상층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하층바
닥은 강회다짐으로 하였다.
수원 화성 복원과정은 제 4단계 사업추진 구간계획을 세워 진행하였으며, 동북포루는 제 2단계사업계획,
화홍문 ~ 창룡문의 성곽복원보수구간에 속한다. 복원보수비용과 가옥철거와 사유지 매입 등에 사용한
금액을 포함한 총 사업비 426,800,000원 중 동북포루 1개소의 사업비는 29,040,000원이 사용되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도편수 14명, 인부 95명, 석공 39명, 목공 181명, 목공조공 62명, 와공 19명, 와
공조공76명, 미장공 42명, 미장조공 42명, 화공 40명, 특수인부 23명으로 총 인원 633명이다.
또한 동북포루의 구조물별 투입자재는 화강석 3㎥, 목재 8,722才, 강회 3,464㎏, 시멘트 16,720㎏, 모래
49㎥, 자갈 66㎥, 잡석 30㎥, 백토13㎥, 진흙 9㎥, 기와 3,010매, 옥개전 70매, 전돌 42,796매, 방전 172매,
잡상취두 2매가 사용되었다고 기록하였다.
동북포루(각건대) 구조물은 중층 2칸x2칸, 5.58평 이라고 기록되어있다. 의궤와 1976년 복원당시 기록, 그
리고 현황을 비교하면 여러 가지 상이한 점을 찾을 수 있다.
잡상취두는 『화성성역의궤』에 용두 2매의 기록이 남아있으나 복원당시에는 용두가 아닌 망와를 이용
하여 지붕 용마루 양끝을 장식하였다. 기록과 다르게 시공된 이유로 1976년 당시만 해도 의궤의 번역본
도 없던 상태였고 수원 화성의 전체 복원설계가 약 6개월에 이르는 짧은 시간에 수원 화성의 전체 복원
설계가 이루어졌기 때문에 의궤를 충분히 검토하기 어려웠고 이로 인한 완벽한 복원이 쉽지 않았던 것
으로 보인다. 복원에 절대적으로 의존한 『화성성역의궤』의 기록을 살펴보면, 여러 부분에서 도설과 물
량 기록과의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당시의 시공결과가 이해되는 부분이 있어
해석의 기준점이 다를 뿐 당시 해결점을 찾고자 하는 남다른 노력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차이점을 보이는 한가지의 예로 동북포루 『뎡리의궤』 도설에는 끝이 뾰족하여 전체적으로는 오(五)각
의 망와가 용마루 양끝을 장식하여 표현되어있고, 『화성성역의궤』 물량기록에는 용두 2매가 쓰여 있
다. 물량기록보다 도설에 우선하여 시공한 사유는 알 수 없으나 그 어떠한 경우라도 당시의 선택이 실
수이거나 잘못 해석되었다고 치부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해본다. 물량표기도 기록이지만 도설도 눈으로
확인하고 기록된 하나의 방편이다. 때문에 그림을 그린 이의 기록을 아주 무시할 수 는 없기 때문이다.
차이가 있다면 1970년대의 복원 해석은 도설을 우위로 두었다면, 2019년의 복원 방향은 물량 기록으로
서의 용두를 우선하였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목부재인 도리방향 외기도리는 9자를 사용하여 왕지에서 추녀가 45도 각도로 들어와 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의궤 기록 7자와는 상이하다. 다만 9자 외기도리를 사용하는 것은 보편적이고 일
반적인 전통건축의 시공방법에서 추녀를 걸기 위한 방법으로 매우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의궤 기록대로
7자로 외기도리를 복원할 경우 추녀를 45도 각도로 받을 수 없다. 이것은 2019 복원정비공사 목공사 편
에서 상세히 논하도록 하겠지만 추녀나 중도리와 같은 부재 길이를 의궤 기록으로 복원하는 것은 처마
내밀기와 상부 지붕가구의 여러 결구문제를 가져오므로 이를 해결하기위한 방안이 필요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외부 구성요소인 남쪽 계단부는 화강석으로 4단의 계단을 쌓았는데 이 또한 의궤 기록과 상이
- 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