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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문이 고장 난 건 오래됐다. 남 교수가 신문을 가지러 나가지 못한 게 벌써 네 계절
            이나 지났으니까. 알았더라면 대문이 여태 이 모양으로 있을 리가 없다. 남편이 형광등
            하나를 갈 줄 모른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오순미 씨의 말이 생각났다. 오순미 씨는 구청

            에서 운영하는 복지관에서 우연히 알게 된 친구다. 사실, 친구는 아니다. 오순미 씨가 나
            보다 아홉 살이나 어리니까. 오순미 씨의 남편에 비하면 남 교수는 퍽 가정에 관심이 많
            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아침세수도 남의 손이 아니면 안 될 지경이 됐으니 더

            나을 것도 없다. 결국 대문을 완전히 닫지 못하고 차에 시동을 켰다. 히터를 켜고 열기를
            기다리는 동안 머리를 뒤로 젖혔다. 오순미 씨는 나를 붙들고 얘기하는 걸 좋아했다. 주
            로 남편의 험담을 늘어 놓는데, 그것이 지겨우면 미국에 있는 손녀 자랑을 하거나 즐겨
            보는 아침드라마 얘기를 했다. 시아버지가 젊은 여자와 재혼을 했는데 그 집 며느리와
            젊은 여자가 여고 동창이라고 했다. 남 교수를 병원에서 집으로 옮기던 날, 상우를 따라

            원무과에 갔다가 대기표를 끊고 기다리던 여자들이 오순미 씨가 말한 드라마 얘기를 하
            는 걸 듣고 대화에 끼어든 적이 있다.



                  “김소연이 아니라 이소연이에요.”
                  “예?”
                  “그 며느리와 동창인 여자배우 이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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