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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에필로그 - <과거>_<현재>_휴 정형외과 옥상

                  빌딩 숲 허공에 솟아 있는 링거 스탠드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그 아래로 옥상 난간
            에 기대어 선 누군가의 뒷모습... 그건 다름 아닌 성폭행 사건 직후, 환자복을 입고 옥상에
            올랐던 효정의 모습이다. 난간 위에 올려 둔 오른 손목엔 멍 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

            다. 어느새 그 모습은 같은 장소에 다시 선 현재의 효정의 모습으로 바뀌고... 단정하고 말
            끔한 차림의 트렌치코트를 입고 난간에 서 있는 효정의 뒷모습.





                  임선애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69세>의 마지막 장면에는 과거와 현재가

            나란히 붙어 있다. 영화의 지문에 해당하는 이 단락은 영화에서는 말도 내레이션도 없이
            영상으로 보여진다. 환자복 차림으로 홀로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선 뒷모습이 처음 보일 때

            는 아슬아슬해 보인다. 왜 다시 환자복을 입었을까? 혹시 뛰어내리려는 것은 아닌가? 근
            심이 치솟는 순간 같은 장소에 선 효정의 모습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다. 그제야 선명해
            진다. 병원복을 입고 선 순간이 ‘과거’ 사건 직후의 효정이며, 트렌치코트 차림은 ‘현재’라

            는 사실이. 한 사람이 같은 장소에 두 번 선다. 첫 번째 효정과 두 번째 효정 사이에는 어
            떤 변화가 있었을까.
            그때 효정의 뒷모습 위로 효정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작성한 전단지에 적힌, 가장 중

            요한 대목이 내레이션으로 흐른다.





            효정     “심효정. 69세. 저는... 병원 조무사 이중호에게 성폭행 당했습니다.”





                  효정은 자신을 성폭행한 가해자를 고발하는 전단지를 옥상에 올려두고 바람에 마음
            껏 날아가게 한 뒤 옥상 출입문 쪽으로 걸어나간다. 옥상에서 날아가는 것은 피해자가 아

            니라 폭로를 담은 전단지다. 피해자는 출구를 찾아 침착하게, 심지어 미소 띤 얼굴로 걸
            어나온다. 서부영화의 마지막처럼 영웅이 퇴장하는 중이다. 영광은 상처뿐일지라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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