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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놀라게 했다. 힐튼 호텔 체인을 소유한 부모를 둔 상속녀 패리스 힐튼은 성관계
동영상이 동의없이 공개되는 사건을 겪었다. 시간도 상관없다. 아동성폭행범 조두순이
초등학생에게 범행을 저지르던 시각은 오전 8시30분이었다. 나이를 많이 먹어 노인이 된
다고 안전해지지도 않는다.
<서울신문>은 2020년 10월21일에 “여성노인 노린 성범죄 5년 새 44% 증가”라는 기
사를 보도하면서 <69세>를 언급했다. “여성 노인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가 최근 5년간
4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사회 진입으로 노인 인구가 급증한 데다 여성 노인 혼
자 거주하는 등 성범죄 표적으로 쉽게 노출되고 있어서다. 28세 남성 물리치료사에게 성
폭력을 당해 고통을 겪는 모습을 담은 영화 <69세>의 주인공처럼 ‘노인 성폭력’ 피해자들
은 사회적 편견에 2차 피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 문제는 노인 대상 성범죄는 수면 위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인이 무슨 성폭력 피해자야’라는 사회적 통념 때문에
피해 여성들이 용기 내 신고하기 쉽지 않다는 의미다.” 피해를 입증해야 사건화가 가능해
지는데, 애초에 사회가 여성들이 겪은 일을 피해로 인정하지 않거나, 피해자의 ‘자질’을
문제 삼는다. 평상시 행동거지나 옷차림, 인간관계나 사회적 성실도가 피해자가 ‘정말 잘
못 없이 피해를 입었는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근거처럼 취급되는 일을 자주 본다. 강도
를 당하면 강도 잘못이지만, 강간을 당하면 피해자가 잘못이 없음을 먼저 입증해야 사건
이 성립한다. 그 과정에서 수치심을 느끼고 나아가 죄의식마저 느끼는 쪽은 피해자가 되
어버린다. 예를 들어 58신을 보자.
효정은 성폭행 피해를 당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에 신고한다. 하지만 수사에 진
척은 없어보이고 가해자는 도통 구속될 기미가 없다. 간병인으로 일하며 만난 환자인 동
인과 동거 중이던 효정은 상황이 지지부진한데다 동인이 자신의 문제를 돕기 위해 노력
하느라 문제가 생기자 그의 집을 나와 다시 간병 일을 시작한다. 58신에서 효정은 자신을
찾아온 고 형사와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고 형사는 침묵을 깨려고 말을 붙인다. “전
부터 느낀 건데, 옷을 되게 잘 입으세요... 여자들 옷이야 나야 잘 모르지만....” 침묵을 깨
려 한다는 말은 시나리오의 설명이니, 영화로 보면 고 형사는 같이 수영수업을 듣는 여자
들이나 성폭행 가해자처럼 뻔하고 불쾌한 외모품평을 하는 것처럼 들린다. 그런데 수사
관계자의 말에서 이런 얘기가 나오니 효정은 차분하게 묻는다. “제가 젊은 여자였으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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