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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울며 겁에 질린 모습으로 지내는 피해자의 모습을 상상한 사람이라면 이 대목에서 큰
혼란을 느낄 것이다. 그 자신이 노인이면서 다른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효정은 사나울
정도의 무표정을 보여준다. 예수정 배우의 연기로 강렬하게 각인되는 이 대목은, 효정이
원하는 것이 관객의 동정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효정이 어떤 사람이든, 설령 치매가 맞
다 해도 성폭행이 없던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 다음으로는 75신이다. 이 대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가해자로 지목된 중호가 수
상하다는 증거를 아무리 영화에서 찾으려고 해도 찾기 어렵다. 심지어 13신의 지문에서
동인은 중호가 일하는 병원으로 슬쩍 찾아갔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라는데, 그 이
유는 “생각보다 젊고, 선한 인상을 가진 이중호의 얼굴” 때문이다. 피해자는 정액이 묻은
속옷을 제출하고도 피해자로 인정을 못 받는 판국에, 가해자는 인상이 좋아서 피해자의
동거인마저 당황하게 한다. 남자는 인상만 좋아도 되는 일을, 여자는 아무런 흠이 없어야
신뢰받는다. 그러다가 75신에 이르러서야 영화는 이중호가 얼마나 폭력적인 인간인지 보
여준다. 중호가 그런 얼굴을 보이는 것은 효정과 단 둘이 있을 때뿐이다. 우리가 영화 관
객이 아니라면 결코 볼 수 없었을 얼굴.
효정은 자신에게 한결같은 신뢰를 보이는 동인의 도움 없이, 형사의 도움도 없이, 직
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한다. 그게 바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다. 당신이
전단지만을 읽었다면 이 이야기를 믿을 수 있었을까? 이 모든 이야기를 영화로 본 뒤라
면, 이제는 믿을 수 있는가? <69세>는 답을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당당히 말하는 영화다.
살아있으므로, 끝까지 말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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