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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세에 코트를 입고, 운동을 다녀온 내가 일을 하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지금처럼 글
을 쓰는 일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어르신, 노인네, 선생님, 할머니, 아주머
니의 글이라도 누군가 기대하고 읽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꼭 글 쓰는 일이 아니
더라도 어떤 일이든 일은 하고 싶다. 노동 시간이 없는 일상은 상상하기 힘들다. 집세+공
과금+핸드폰요금+인터넷요금 그리고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돈을 벌고 싶다. 그때도 아이
스커피를 즐겨 마실 수 있을까. 커피 취향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데 몸의 시간은 변할지
도 모르겠다. 어쩌면 커피값보다 약값이 우선일지도.
옷을 잘 갖춰 입고, 꾸준히 운동을 하고, 여전히 노동을 하고, 많은 고민을 하며 살아
가는 와중에 내가 노인이라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타인에게 무시를 당하거나, 폭력의
피해를 경험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길 위에서 소리를 치고 도
움을 청할 수 있을까. 주변 사람들에게 모두 알리고 증거를 수집해 두었다가 경찰서에 가
서 호소할 수 있을까. 10대, 20대, 30대에 겪은 성폭력의 경험도 고발하지 못한 내가 60
대에는 용기 내어 말할 수 있을까.
효정이 성폭력을 겪은 뒤 처음으로 가해자와 마주하는 장면에서 화면 밖에 있는 나는
무서워 벌벌 떨었다. 가해자를 ‘우연히라도 다신 만나고 싶지 않다’고했던 효정이기에 더
그랬지만, 막상 효정 앞에 선 가해자가 내뱉는 폭언은 어느 순간 하찮게 느껴졌다. 그에
게 효정을 잡거나 밀칠 수 있는 물리적인 힘은 있었지만, 그의 말에는 전혀 힘이 없었다.
반대로 효정이 “인생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아. 니가 저지른 거 하나하나 다 갚고, 그리고
도 질기게 안 끝나는 게 인생이야.”라고 말할 때는 가늠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부끄러움
을 모르고 날뛰는 가해자 앞에서 단호하게 그 말을 뱉기까지 69세의 효정이 시도했을 많
은 옷차림, 많은 운동, 많은 노동과 많은 고민이 그녀에게 어떤 힘을 보탰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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